[위기의 대학생]⑦"내 잘못인 것만 같아요"…캠퍼스의 비극 막으려면
자살사고 '쉬쉬'…데이터 부족, 공유엔 소극적
학내 상담원 한두명…센터에만 맡겨선 안돼
"찾아가는 지원 필요…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A대학교 학생상담센터장으로부터 지난해 말 긴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한 대학생이 몸을 던져 숨졌는데 후속 조치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몰라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정 센터장은 24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생활하다 군 장병들의 잇따른 자살에 안타까움을 느껴 상담심리사로 전향했다. 2010년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한 뒤 각종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강연과 함께 국방부 '병영생활 전문상담관'으로 활동했다.
유가족 상담 경험이 풍부한 정 센터장은 학교로 달려갔다. 교내 학생의 자살이 다른 학생들의 심리에 악영향을 미쳐 또 다른 희생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그 학생의 소속 학과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봤다"고 했다. 그런 다음 질문지를 만들어 해당 학생들에게 비공개로 배포했다. 사망한 학생에 대한 생각이 평소 얼마나 자주 나는지, 최근 잠을 설치거나 입맛이 없는 등 신체적인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조사해 고위험자를 식별했다. 고위험자로 판단된 학생들에 대해선 신속하게 1대 1 대면 상담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정 센터장에게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놨다.
"그 친구가 만나자고 했는데 바쁘다고 못 나갔어요.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요." "밥 한 끼 같이 먹자고 했는데 못 먹어서 너무 미안해요. 같이 밥을 먹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같아요."
정 센터장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공감해주되 '네 잘못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위로의 말을 건넸다"고 했다. 충분히 눈물 흘리며 마음을 치유하고 애도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대학은 이러한 사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고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면서 "대학이라는 조직 내에서 자살 사고를 쉬쉬하고 문제를 덮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예방책과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든 구조"라고 했다.
실제로 2016년 교육부에서 경찰청의 협조로 전국의 모든 대학별 자살 데이터를 통해 현황을 분석하고자 했으나, 응답률이 44.7%에 그치면서 전체 대학의 명확한 현황 파악에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지금도 자살 원인 등 구체적 내용에 대한 기록이 없어 대책을 마련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학생들 마음 건강 관심 높아…상담인력·전문성 부족
이미 대학생들은 본인과 주변 동료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고, 자살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한림성심대학교에서는 지난달 2시간짜리 자살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춘천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상담사를 초빙한 이 강연은 당초 100명을 목표로 했는데 총 162명의 학생이 신청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호응을 보였다.
한림성심대 관계자는 "학생의 정서 안정과 원활한 대학 생활을 위해 학기 초 신입생을 대상으로 대학 생활 적응검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개별 상담에서는 다양한 심리검사 및 해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들이 자신의 심리와 우울, 불안 등의 정서 불안정에 관한 관심도가 높아져 자살 예방 교육에 많이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대부분의 대학 내 자살 예방 교육은 일회성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인 원인 파악과 해결이 쉽지 않다.
특히 학생상담기관 내 상담사 인력으로는 몰려오는 학생들의 상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뿐 아니라 자살 예방을 위한 실질적인 전문성도 떨어지는 실정이다. 전국 130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5년 전국대학교 학생상담기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학생상담기관의 기관장 전공이 상담 분야인 대학은 10곳 중 4곳에 그쳤다. 또한 10곳 중 7곳 이상은 상담(연구·책임) 교수가 없다고 응답했다. 상담원이 1명 있는 대학이 33.1%, 2명인 대학이 23.1%였다.
한 대학 학생상담센터에서 일한 지 1년 된 한 상담사는 "행정업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당장 상담이 필요한 학생의 '위급상담'을 하기 위해 행정업무를 뒤로 미뤄두면 어쩔 수 없이 초과 근무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日, 상담 가이드라인 배포…"공동체 회복 지원"
일본의 경우 한국과 달리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일본학생상담학회(JASC)에서 담당해 가이드라인을 제작한다. 이 내용을 각 대학에 배포해 기본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행동요령을 제시한다. 특히 이 가이드라인은 대학 내 근무하고 있는 모든 교직원을 대상으로 대학 전체가 학생의 위기관리와 자살 예방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건전한 대학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고, 고립을 막기 위해 캠퍼스 안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상담기관만 대학생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면서 학부, 단과대학, 다른 지원 기관 등과 연계하는 협동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상담사는 학내에서 위기 대응과 자살 예방 시스템을 통해 학내 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도록 안정적인 지위와 보수를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정 센터장은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담임교사' 제도가 있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관심을 갖고 살펴볼 수 있지만 대학생의 심리상담, 마음 건강에 있어서는 학생상담기관에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며 "대학에선 학과장이 담임교사 역할을 하고 학생상담기관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들도 수업 시간에 학생의 표정이 어둡진 않은지, 잦은 결석을 하는지, 술을 자주 마시는지 등 표정과 행동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학 내 자살 관련 데이터를 교육부에 일부라도 공개해서 자살 예방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성과를 낸 우수 대학은 표창을 주는 새로운 제도를 신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기정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대학생 자살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어려움이 아니라, 성장 과정의 단절과 사회 구조가 만든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이 연계된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학생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는 '찾아가는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또래 멘토링 등 공동체 회복 중심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한편 진로 경험과 정신건강을 함께 다루는 통합적인 접근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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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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