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인하 압박 벗어났지만
빅데이터 활용 등 목소리 내야
"대선 주자들이 우리를 패싱해줘서 오히려 고맙다." 대선을 2주 앞둔 어느 날, 한 카드사 직원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거 대선 때마다 반복됐던 카드 수수료율 인하 공약이 이번엔 나오지 않자 한숨 돌렸다는 의미다. 실제로 19·20대 대선 과정에선 카드사들이 정치권의 '표심용' 압박에 적잖이 시달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우대수수료율 적용 기준을 대폭 확대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간편결제 수수료를 카드사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고율의) 플랫폼 수수료 공개를 공약한 바 있다.
정치권의 논리는 단순했다. "카드 수수료를 깎아 주면 자영업자가 산다." 하지만 카드사 입장은 다르다. 카드 수수료율은 이미 한계 최저치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 매출 3억 원 이하 가맹점이 부담하는 수수료율은 2012년 2.12%에서 현재 0.4%까지 낮아졌다. 부가가치세 환급 제도까지 감안하면 영세사업자들의 체감 부담은 더욱 줄어들었다.
정치권은 이런 배경 속에서 21대 대선에서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내지 않고 있다. 인하 카드가 표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다. 카드사들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또 "은행이 정치권의 타깃이 된 덕에 우리는 조용히 지나갈 수 있다"는 분위기까지 팽배하다.
그러나 이러한 '패싱'을 그저 반기는 것으로 끝내선 안 된다. 카드사들도 이제는 대선이라는 공론의 장을 활용해 자신들의 숙원과제를 사회적 어젠다로 끌어올리고 활용할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예컨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제시한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상품 및 신용평가 체계 혁신' 공약은 카드사 입장에서 적극 활용할 만하다. 카드사들이 풍부한 고객 데이터와 소비 패턴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이력 부족자(신파일러)를 위한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카드사가 보유한 상권 분석 역량을 영세 자영업자들과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와의 정보 비대칭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자영업자들을 위해 빅데이터를 일정 조건하에 공공에 개방하는 방식이다. 이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는 일이어서 의미가 크다.
대선은 정치인만의 무대가 아니다. 사회 각계가 자신의 목소리를 공론화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의 장(場)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는 보고서까지 내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카드업계도 대선주자들의 패싱 뒤로 숨지 말고, 데이터 사업 경영이나 부수업무 규제 완화 등 실질적 개선 과제를 적극 제안해야 한다. 또 빅데이터를 손에 쥔 '시장 플레이어'로서 자신들이 보유한 데이터 등 인프라를 활용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주체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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