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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2도]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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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히키코모리 경향 보이는 은둔형 외톨이
절망 직시하고, 위로·희망 받아야

"내 인생은 비참해졌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어. 난 두 손을 맞잡은 채 길버트가 구하러 오길 기다리며 안전한 달팽이 요새의 깊은 곳에 숨어들었지. 사랑도 못 받고 갇힌 채로 말이야." 애니메이션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에서 주인공 그레이스가 늘어놓는 푸념이다. 삶을 경멸하는 염세주의자다. 어린 시절부터 선천성 구개열, 잦은 병치레, 친구들의 괴롭힘 등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쌍둥이 형제 길버트마저 다른 지역으로 입양되자 삶의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한다. 정신적 균형과 내면의 역학이 심각한 수준으로 붕괴해버린다.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스틸 컷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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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엘리어트 감독은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애달픈 삶을 거칠고 무겁게 다룬다. 점토 본연의 질감과 울퉁불퉁함을 부각해 인생의 불완전함을 표현한다. 그레이스뿐만이 아니다. 영혼의 단짝인 길버트, 판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한 제임스, 매일 술에 절어 지내는 아버지 모두 외형이 투박하고 삐뚤빼뚤하다. 비대칭적으로 보이기까지 해 어딘가 결합이 있거나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우중충한 분위기로 뒤덮인 작품은 아니다. 엘리어트 감독은 주변부 이미지를 뭉개서 뽀얗게 만드는 블러 효과로 낭만적인 느낌을 낸다. 비네트(화면 중심보다 테두리가 어두워지는 효과)로 따뜻한 느낌도 부여해 축 처진 삶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레이스는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시발점은 절망에 대한 의식이다. 자기가 키우는 달팽이 실비아에게 망가진 삶을 고백하면서 조금씩 비관을 극복할 자세를 갖춰간다. 얼핏 보면 넋두리지만 자신의 징후를 뚜렷이 인지하며 구원을 요청한다. "삶은 내게 모질게 굴었지만, 덕분에 더 감사하며 살게 됐지."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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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부정하거나 외면한다면 기류는 바뀔 수 없다.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 "행운의 가장 내밀한 은신처의 깊고도 깊은 곳에는 불안도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절망"이라고 썼다. 통증이 질병을 경고함으로써 우리에게 제때 치료할 수 있게 해주듯 불행과 수난이 선물이자 무한한 은혜라는 역설이다. 정신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깨워준다고 주장했다.


스스로 절망을 직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달팽이처럼 더듬이를 쏙 집어넣고 껍데기 속으로 숨어버린다. 핵가족 중심 사회로 변화하면서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9~34세 한국인의 2.4%는 은둔형 외톨이다. 성과주의에 치여 비판에 민감하고 히키코모리 경향까지 보인다. 가족 혹은 지인과의 단순 교류로는 해결할 수 없다. 당사자가 어렵다고 느끼는 상황에 도움을 주거나 고민을 들어주는 단단한 끈이 필요하다.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스틸 컷

영화 '달팽이의 회고록'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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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에게는 도서관에서 만나 친구가 된 노파 핑키가 그런 존재다.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으로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밑바탕에는 긴밀한 감정 공유가 있다. 시종일관 절망을 집어삼킬 만큼 강렬한 유대감을 뿜어낸다. "(내게) 가장 끔찍한 감옥은 스스로 만든 감옥이었어. 너도 스스로 감옥을 만든 거야, 그레이스. (중략) 이제 너도 그 껍질에서 나올 차례야."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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