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에 녹아들어 규제 정책에 실질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인공지능(AI) 기반 법·규제·정책 플랫폼 스타트업 코딧 정지은 대표의 말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조기 대선을 앞둔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바람을 함축한다. 그는 최근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 '2025 OECD 규제정책전망 분석과 한국의 대응 방안' 이슈페이퍼를 발표하며 이 같은 기대를 전했다. 어찌 됐든 조기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각 후보가 공약 경쟁이 펼쳐지게 될 지금이 벤처·스타트업 생태계가 실제 현장에서 겪는 규제 불확실성과 비효율을 줄일 기회라는 것은 업계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업계가 이번 조기 대선에 기대를 거는 이면에는 한계에 봉착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이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은 갈수록 심화돼 창업기업 수는 줄고 있고, 업력 3년 이하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가 2년 연속 감소하는 등 벤처투자는 여전히 위축돼 있다. GDP 대비 투자 규모 비율은 0.26%로 선진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지난해 신규 유니콘 기업은 2개에 불과한 데다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딥테크 유니콘'은 드물다. 정부의 지원에도 AI, 바이오 등 첨단산업의 기술 경쟁력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재 우리 경제는 금리, 물가, 환율 상승 등의 위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벤처기업의 절반 이상인 52.3%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가 경영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올 1분기 벤처기업 경기전망지수(BSI)는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외부적인 요인과 함께 국내의 전방위적인 규제가 이런 위기 상황을 만들었다고 업계는 진단한다. AI, 모빌리티,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진입규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17개는 규제로 국내 사업이 불가능하다. 공유숙박, 승차 공유 서비스, 원격의료 및 유전체 검사 서비스 등이 국내 규제 법률에 가로막혀 있다. 여러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혁신을 저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플랫폼과 전문 직역과의 갈등은 외려 심화돼 신(新)사업의 발전을 막고 있다. 또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등 경직된 제도는 핵심 경쟁력 저하와 함께 자율적 열정과 유연성이 무기인 벤처기업의 문화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대선 공약에 반영하려는 과제는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 혁파와 벤처 투자 시장의 회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는 비단 벤처·스타트업 업계만을 위한 게 아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근래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까지 벤처기업은 우리 경제가 어려운 시기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해 왔다. 현재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 역시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활성화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업계에선 각 정당에 벤처·스타트업 친화적 규제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 제안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책 제안에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인 규제 개선 방안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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