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온라인 상담 매년 3만건
경찰 신고해도 중재에 그쳐
갈등 끝에 보복 범죄도 잇따라
경찰 강제진입 권한 등 확대해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아파트 방화 사건은 층간소음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층간소음이 '살인사건'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극단적 범죄를 제외하고도 층간소음은 사회나 정부가 개입하기도 어렵고 해결하기도 힘든 난제 중 난제가 된 지 오래다.
24일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전화·온라인 상담 건수는 3만3027건으로 집계됐다. 센터가 상담을 시작한 2012년(8796건)에 비해 275%가량 늘어난 수치다. 특히 2020년 이후에는 매년 3만건을 웃돌고 있다. 전화상담 이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이뤄지는 방문상담·소음측정 등 현장진단도 2024년 한해 1888건이었다. 이 또한 2020년 897건 이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해결할 방법이 마땅찮다
그러나 상담 또는 현장진단이 이뤄지더라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다. 국토교통부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원회에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분쟁 198건 중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40건에 그쳤다. 분쟁조정위의 결정은 강제력이 없다. 경찰에 신고해도 층간소음을 수사할 법적 근거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방법이 없다.
문제로는 층간소음 기준이 느슨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꼽힌다. 공동주택 층간 소음의 범위 및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국내 층간 소음 기준은 바닥과 벽 충격을 통해 발생하는 '직접충격소음'의 1분 등가소음도(소음이 가장 큰 1분간 평균 소음) 기준, 주간은 39dB(데시벨)이고 야간은 34dB이다.
이웃사이센터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소음을 측정한 3609건 중 법적 기준을 넘은 소음이 발생하는 것으로 인정된 경우는 416건으로 11.5%에 불과했다. 나머지 88.5%(3193건)는 소음이 기준 이내로 측정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 기준인 실내 소음 기준 주간 35dB, 야간 30dB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줄 잇는 보복범죄
층간소음 갈등 끝에 경찰에 신고했다가 보복당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10월 충북 청주시에서 빌라 아래층 이웃의 경찰 층간소음 갈등 신고로 조사를 받고 나온 60대 남성은 곧바로 식용유와 라이터를 들고 아랫집을 찾아가 "문을 열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다가 구속됐다. 지난해 1월에는 경남 사천시 한 빌라 계단에서 층간소음을 항의하던 주민이 위층 주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층간소음은 2013년 설 연휴에 발생한 서울 면목동 살인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 중랑구 면목동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화가 난 주민이 위층에 올라가 30대 형제 2명을 밖으로 불러내 흉기로 살해했다. 당시 윗집에는 60대 노부부가 살고 있었고, 피해 형제는 명절에 부모를 뵈러 왔다가 봉변을 당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2023년 발간한 '층간 소음 범죄의 특성과 경찰의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살펴보면 층간 소음 범죄의 연도별 1심 선고 현황은 2013년 43건에서 2022년 125건으로 약 3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살인 및 살인미수는 총 62건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고, 상해죄 128건, 특수협박 98건, 폭행 93건 등이었다.
외국은 어떻게 하나
미국, 독일 등에서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지속적인 층간소음으로 인해 임대인이 계약해지를 통보할 수 있는 조항을 일반적으로 넣는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층간소음에 따른 임대인의 계약해지뿐 아니라 임차인의 계약해지도 어렵다. 계약 기간 도중 이사가려면 금전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2023년 층간소음으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임차인에게 법원은 "층간소음은 임대인이 아닌 주택 건설 주체에게 부과된 기준"이라며 임대인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 일부 주에선 조례에 따라 층간소음 유발 행위에 대해서 250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90일 이하 구류에 처할 수 있다. 독일은 연방질서위반법에 '이웃을 괴롭히거나 타인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소음을 낸 사람에게 최대 5000유로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직접 소음 측정기를 통해 데시벨을 측정한 뒤에도 중재에 상습적으로 응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등 법적인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가 제대로 된 관리·감독 등 역할을 하기 위해선 법적 근거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경실련은 시공사의 층간소음 전수조사 의무화, 층간소음 기준 초과 시 벌칙 강화, 층간소음 표시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공동주거시설 층간소음 관리법' 제정을 청원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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