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장성 시굴 조사서 실체 확인
석축벽 구조, 조선왕조실록 기록과 일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서울 아차산장성의 실체를 규명하려던 시굴 조사에서 '살곶이 목장성'의 흔적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살곶이 목장성은 조선 시대에 말, 수레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한 사복시에서 관리했던 국영 말 목장이다. 그동안 '목장지도(牧場地圖)'에 수록된 그림인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와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司僕寺箭串牧場圖)'를 통해 서울 동대문구, 중랑구, 성동구, 광진구 일대에 있었다고 추정됐다. 보물인 목장지도는 전국에 분포한 목장을 그린 조선 시대 지도첩이다.
연구소는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구간에서 아차산장성의 흔적을 추적했다. 아차산장성은 서울 광진구 아차산과 동대문구 배봉산의 능선을 따라 길게 조성됐던 성이다. 중랑천 일대에 형성된 들판인 살곶이벌을 에워싸고 있었다.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처음 보고된 이 유적의 현황과 분포는 '대정오년도고적조사보고(大正五年度古蹟調査報告·1916년)', '독도부근백제시대유적조사약보고(纛島附近百?時代遺蹟調査略報告·1919년)' 등에 기록돼 있다. 백제 시대 성곽이라는 등의 논란이 있었으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성격은 파악되지 못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3월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한 성벽 두 곳에서 시굴 조사를 벌여 조선 시대 지도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살곶이 목장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성벽은 잔존높이가 3m, 폭이 11m다. 흙을 다져서 만든 토축부(土築部)를 중심으로 일부 석축을 덧대어 구축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자연 지형을 활용해 토성벽을 먼저 축조하고 한 차례 이상 덧대어 쌓았다"며 "마지막 단계에 성 안쪽방향으로 석축벽을 쌓아 목장 안에 있는 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았던 구조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가 내리는 철이면 토성이 무너져 말이 도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 면에 석성을 쌓았더니 말이 빠져나가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조선왕조실록 명종 10년(1555) 기록과 일치하는 양상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성벽의 기저부와 석축 부근에서 조선 시대 도기편과 자기편이 확인돼 성벽의 축조 연대도 가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굴 조사의 성격상 살곶이 목장성의 전체적인 면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실체를 규명한 첫 고고학적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는 충분하다고 평가된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주변 지역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지속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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