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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만 서울 노후주택 곳곳, 화재에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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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내 30년 이상 주택 63만5575채
대피로 불법적치물 가득, 소방 설비 미비
지자체 소방시설 지원 확대 필요성 제기돼

[아시아경제 최태원 기자] 지난 14일 1965년 완공된 서울 서대문구 A 아파트의 복도는 신발장과 의자, 소파, 수납장, 항아리 등 잡동사니로 가득 차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심지어 창문을 통해 전선을 연결해 복도에 냉장고를 설치한 가정도 보였다. 소화전조차 없었지만, 각 층에 비치된 소화기는 굳은 먼지 위로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고, 사용 기한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스티커는 색을 바란 모습이었다.


1972년 완공된 은평구의 B 아파트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동에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간이 창고가 설치돼 있었고, 또 다른 동에선 불법적치물이 옥상 출입구 근처를 절반 이상 점유했다. 신발 수납장으로 개폐가 막힌 소화전은 물론 강한 힘을 주어도 열리지 않는 고장 난 소화전까지 보였다.

1965년 완공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복도는 신발장과 의자, 쇼파, 수납장, 항아리 등 잡동사니로 가득차 한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사진= 최태원 기자 skking@

1965년 완공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복도는 신발장과 의자, 쇼파, 수납장, 항아리 등 잡동사니로 가득차 한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사진= 최태원 기자 s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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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이 64만채에 육박하지만 소방 시설이 미비하고 화재 예방 대책이 충분하지 않은 등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일 ‘서울시 노후기간별 주택현황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시 내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63만5575채다. 이들 가운데 일부 주택은 불법적치물이 만연하고 스프링클러와 소화전 등이 설치돼 있지 않은 등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의 계단과 복도 등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대피 시설이다. 적치물이 있을 경우 화재 발생 시 고스란히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계단, 복도, 비상구 등 피난시설과 방화시설을 폐쇄·훼손하거나 그 주위에 물건이나 장애물을 적치해 피난·소방 활동에 지장을 준다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책임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A 아파트 주민 이모씨(29)는 “사는 집이 가장자리 쪽인데 복도에 물건들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화재 발생 시 탈출에 지장을 줄 것 같다”며 “부엌이 복도 쪽을 향해 나 있는데 화재 발생 시 복도 적치물들에 옮겨붙어 큰불로 이어지기 쉬워 보인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 시 선제적으로 활용돼야 할 소화기와 소화전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다. B 아파트에 비치된 소화기 대다수는 제조년도가 2006년으로, 제조일로부터 10년인 내용연수를 훌쩍 넘겼다. 2017년 개정된 소방시설법에 따라 제조된 지 10년이 지난 소화기는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만약 성능 확인을 받아 이상이 없으면 사용기한을 1회에 한해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고장 났거나 개폐가 막힌 소화전도 위급 상황에 긴급히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A 아파트 1층에 구비된 낡은 소화기는 아파트 현관 밖에 설치돼 있기도 했다. 화재 발생 시 건물 밖으로 나가야 소화기를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B 아파트 주민 김모씨(32)는 “딸아이와 함께 사는데 소방 시설이 부족해 불안하다. 아파트 계단 쪽 전기 배선이 몰려있는 곳에라도 소방 시설이 보강됐으면 한다”면서 “지난 여름 장마 때도 배선들이 고장 나 수리하는 등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노후 주택들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있지 않다. 스프링클러는 1992년에야 개정된 관련 법령에 따라 16층 이상 아파트에만 설치되도록 규정됐다. 2005년 소방시설법 시행령 시행에 따라 11층 이상 아파트 건물 전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도록 기준이 강화됐다. 2018년에서야 6층 이상 건물을 지을 때 스프링클러를 모든 층에 설치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불법 적치물과 시설 관리 등에 대해 지속적인 단속과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내용연수가 10년으로 규정됐음에도 많은 곳에서 노후한 소화기를 쓰고 있다.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돈묵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도 “설치된 방화설비 보강을 꼼꼼히 하고, 소방용품 사용법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프링클러와 소화전 등을 의무 설치해야 한다는 법령 개정이 소급적용되지 않은 데에는 의견이 갈렸다.


이 교수는 “자동 소화 설비인 스프링클러가 없다면, 화재가 확산된 후에 진압해야 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며 “비용이 부담된다면, 화재 진압이 어려운 고층이나 소방차 진입이 원활하지 않은 곳 등을 추려서 설치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 최 교수는 “스프링클러 등을 모두 설치하면 좋겠지만, 소방 시설 설치 비용과 과정이 만만찮다. 건물을 뒤집어엎는 수준”이라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기존 설비와 교육에 집중하는 등 차선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 비치된 소화기. 소화기의 내용연수는 제조일로부터 10년이지만, 2006년 제조된 소화기가 비치돼있다. /사진= 최태원 기자 skking@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 비치된 소화기. 소화기의 내용연수는 제조일로부터 10년이지만, 2006년 제조된 소화기가 비치돼있다. /사진= 최태원 기자 sk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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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에 서울시는 2010년부터 ‘주택용 소방시설의 우선 설치 대상’로 지정해 주택용 소방시설을 보급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주택의 소방시설 설치 조례’에 따르면 주택용 소방시설 우선 설치 대상은 ‘노인 홀로 거주하는 주택’과 ‘장애인이 거주하는 주택’,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거주하는 주택’ 등이다. 자치구가 일선 소방서에 관내 주택용 소방시설의 우선 설치 대상을 알리면, 소방서에서 대상자의 설치 의사를 묻고 응한다면 무료로 설치해주는 방식이다. 지원하는 주택용 소방시설은 소화기와 화재감지기 등이다.


하지만 지원 대상자가 아니거나, 대상자이더라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설치가 불가능한 맹점이 있다. A 아파트 주민 한모씨(71)는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다행히 우리 집에는 소화기와 화재경보기가 있다”면서도 “대상자가 아닌 이웃들은 지원을 못 받았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화재경보기와 개인 소화기 등은 화재에 취약한 노후 주택 등에 꼭 필요한 설비"라며 "한 집에서 불이 났는데 이웃집이 안전할 수 없다.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 지원 대상자를 확대하고, 지자체 차원에서 통반장 등을 활용해서라도 적극적인 홍보와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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