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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낮과 밤의 인간 통해 분열과 화합 말하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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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태양' 김정 연출
바이러스로 갈라진 두 인류 통해 공존과 인간성 질문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밤의 인간이 될지 말지, 난 아직 못 정했어요”


신인류 ‘녹스’와 구인류 ‘큐리오’로 갈라진 인류의 미래를 그린 희곡 ‘태양’은 21세기 초 생물학 테러 발생 후 40여년이 지난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가 급감하고, 파괴된 사회 속에서 항체가 생긴 신인류 녹스는 기존 인류인 큐리오를 차별한다. 두 계층 사이 위계와 갈등 속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는 ‘태양’은 일본작가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작품으로 제63회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 [사진제공 = 경기도극단]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 [사진제공 = 경기도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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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내 초연이후 두 번째로 ‘태양’ 연출을 맡은 김정 연출가는 “작품 속 양극화된 사회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더 정확하게 다가왔다”며 “태양은 얼핏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이는 메타포고 그 속엔 극단적으로 갈라진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국립정동극장은 2023년 공동기획 첫 작품으로 연극 ‘태양’을 선택했다. 경기아트센터, 경기도극단과 공동 기획·제작한 작품은 2년 만에 무대에서 다시 관객과 만난다.


인간관계의 화합과 화해, 연극 통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민

김 연출은 양극화된 근 미래 인류를 창작할 때 마에카와 작가가 두 집단의 현실을 ‘분단’이라 표현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다시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념의 갈라짐이 아니라 섞여 사는 세상 속에서도 극단적으로 나눠진 사회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뛰어난 정치가가 나타난다고 이 상황을 해소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다”며 “내가 하는 일은 연극인데, 과연 인간관계의 화합, 화해를 연극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2021년 초연 당시 연극 ‘태양’의 한 장면. [사진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1년 초연 당시 연극 ‘태양’의 한 장면. [사진제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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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신인류 녹스는 항체를 통해 강하고 젊은 육체를 손에 넣는 대신 자외선에 대한 저항이 약해져 태양을 피해 살아야한다. 이들의 등장으로 평범한 사람들인 큐리오는 이내 구인류로 분류된다. 마에카와 작가는 늙음과 죽음을 모르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밤의 인간 녹스를 통해 구현하고, 인간이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이 행복할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김 연출은 스스로를 ‘녹스보다는 큐리오에 가까운 사람’이라 규정한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땐 자연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중엔 오히려 큐리오는 버려진 폐허, 녹스는 쓸모있다고 선택돼 만들어진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스로 대변되는 이성, 속도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내 성향은 큐리오와 같은 올드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연극은 선사시대를 기원으로 한 매체가 아닌가.”


원작은 두 계층 사이의 선망, 절망, 그리고 희망을 다루고 있지만 비극의 정서도 품고 있다. 김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 디스토피아적 성격의 작품 속 마에카와 작가가 그린 희망 없는 미래를 강화했다. 그는 “갈라졌던 두 집단이 서로 악수하고 이해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며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미술적 컨셉을 시도했다”고 재연의 변화지점을 짚었다.

태양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등장인물은 각각 태양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갖는다. 해가 뜨고 져야 하루가 간다고 믿는 이쿠타 소이치부터 태양을 등지고 살면 안된다고 말하는 카네다 요지, 밤의 인간(녹스)가 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는 이쿠타 유까지. 인간이 눈뜨고 감는 시간을 밝히고 자연을 감싸는 태양을 압도적 빛이라 느낀 김 연출은 재연 무대 컨셉에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 태양을 만드는데 각고의 노력을 더했다. “배우들의 말에서 오는 모호한 관념이 아니라 무대에 체화시키는 압도적 빛을 만들기 위해 스텝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한 김 연출은 “태양이든 그 무엇이든 압도하는 빛이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무대 장치 사이로 새어나오는 태양빛이 아름답다거나 슬프다거나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관객에게 불러일으켰으면 좋겠다”며 웃어보였다.

김정 연출은 '태양'의 재연을 준비하며 "과연 인간관계의 화합, 화해를 연극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 경기도극단]

김정 연출은 '태양'의 재연을 준비하며 "과연 인간관계의 화합, 화해를 연극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 경기도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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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인간만이 가진 헌신과 희생의 가치"

연극계 거장 한태숙 조연출로 6년간 호흡을 맞추고 2015년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으로 연출 데뷔한 김정은 극작가 고연옥과 함께 선보인 ‘손님들’(2017) ‘처의 감각’(2018) ‘인간이든 신이든’(2021) 등 세 작품으로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새로운 작품을 찾던 중 이홍이 번역가의 추천으로 처음 마주한 ‘태양’에 매료된 그는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에 따른 두산아트센터 기획공연 기회를 통해 작품의 초연 연출을 맡았다.


양극화된 두 집단을 그린 작품 뒤로 작금의 사회를 관찰하는 그의 시선은 ‘다치고 오해받지 않기 위한’ 움직임에 멈춰섰다. 그는 “사회는 더 이상 논쟁하고 충돌해서 깨닫는 세상이 아니다”라며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서로 멀리하는 세상에서 나를 새롭게 보고 남을 새롭게 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나, 그리고 우리가 하는 연극으로 그 일을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시기 염세적 사고가 깊어졌다는 김 연출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도 기댈 데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치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책들을 뒤져보고, 옛 작품을 보면서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연극 ‘태양’은 26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공연한다. 작품의 원작자 마에카와 도모히로가 김 연출과 함께 12일 14시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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