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IRA 비판 말고, 韓 보조금 정책부터 손보자
IRA 대응 위해 韓 통상본부장·산업장관 잇따라 방미
세계 주요국 미래업종 자국 우선주의 선회
한국도 이를 기점으로 보조금 정책 개편 필요
무·저공해차 보급목표제도 손봐야 할 과제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 때문에 한국의 고위 관료들이 연일 미국으로 날아가고 있다. 동맹을 믿고 미국 내 수백만달러의 투자금을 쏟아붓고도 뺨을 맞은 격이 되자 어떻게든 이를 뒤집어 보겠다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부가 고민해야 할 점은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몇만대를 더 파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이번 법안을 떠나서 세계 주요국들은 배터리나 반도체와 같은 미래 핵심 업종에 대해서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지 오래다. 이에 맞서 우리도 국내 전기차 산업의 전환점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
2016년 중국은 ‘배터리 규준’을 무기로 한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중국 시장에서 배제되더라도 유럽을 비롯한 미국 등의 시장 확장을 통해 얼마든 손실을 상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의 보호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기업들이 세계시장에 나오기에는 한참 걸릴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왔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중국의 배터리와 전기차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보호막 속에 급성장해 이제 한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수년간 자국 시장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시간 내에 급속 성장을 이뤄내서다. 전기차 보조금을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활용해 자국 산업을 일으킨 성공적인 사례라 부를 만 하다. 미국의 보조금 정책을 어떻게든 낮춰 보겠다고 버둥거릴 게 아니라 우리도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케이스 스터디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대부분 수입차다. 테슬라는 당연하거니와 쉐보레의 볼트도 엄연히 수입차다. 미국이나 중국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유럽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를 비롯해 일본도 대부분 자국산 전기차 보호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소형 전기차를 주로 생산하는 자국 기업 르노에게 유리하도록 보조금 최대 지급 상한을 낮췄다. 내연 기관에서 강점을 가진 독일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보조금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높게 책정돼 있다. 중국은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전기차에는 아예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몇 년 전 테슬라가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싹쓸이한다는 논란이 일자 정부는 황급히 보조금 지급을 위한 가격 상한을 설정했다. 5500만원 이하인 전기차에는 보조금을 100% 지원하고 5500만~8500만원 사이는 절반(50%), 8500만원 이상인 차종에는 보조금이 나가지 않도록 한 테슬라의 모델3을 잡기 위한 긴급 처방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테슬라뿐 아니라 아우디, 볼보 폴스타, BMW 같은 유럽 브랜드들이 대거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옵션 조정을 통해 이 기준을 절묘하게 빠져나가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어서다. 단순히 가격 제한만으로는 수입 전기차의 파생 공세를 막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정부가 수입과 완성차의 구분 없이 단순히 ‘전기차 보급 확대’에만 열을 올릴 경우 결국 늘어난 친환경 차 비중의 상당수는 수입차들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
특정 국가를 겨냥해 보조금을 제약하는 것은 통상 분쟁의 빌미가 된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는 일본의 사례처럼 자국산 전기차의 특성에 맞는 보조금 확대 정책 등으로 산업 보호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산 전기차에는 배터리 전원을 외부에 빼내서 쓸 수 있는 장치가 있는데, 일본 정부는 이런 기능을 가진 전기차에 보조금을 20만엔가량 더 준다. 대 놓고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는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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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뒤면 환경부가 내년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을 내놓는다고 한다. 아직까지 업계에서는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새 정부가 서둘러 현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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