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서평 무크지 ‘교차’ 2호 ‘물질의 삶’이 출간됐다. 이번 호에서는 인간 중심주의 너머 비인간 행위자들의 세계, 살아 움직이는 물질의 행위성에 주목한다. 천문학자 신광복, 철학자 문규민, 비교문화학자 김지은, 종교학자 안연희, 철학자 조태구 등이 참여했다.

[책 한 모금] 서평 무크지 ‘교차’ 2호 주제는 ‘물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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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생각하는 과학의 성공이란 독점적 진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진리’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진리를 얻으라’는 말은 되도록 많은 실재에서 진리를 얻으라는 요구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실재에서도 되도록 많은 진리를 얻으라는 말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후자가 저자의 요구임에 틀림없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코끼리를 만지는 사람들로 우리를 비유하는 대목에서 확실해진다. 저자는 이 비유를 언급하며 “우리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너무 많이 일반화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협력자들을 모아서 코끼리의 다양한 부분들에 도달하려 노력해야 한다”(532쪽)라고 말한다. […] 따라서 저자의 능동적 실재주의는 다원주의를 옹호해야만 실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40쪽 · 신광복, 〈물질, 합의, 다원주의, 그리고 실재주의〉

물질적 생기는 “인간의 의지와 설계를 흩뜨리거나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힘이다. 이런 독립성은 생기가 “자신만의 궤적, 성향, 경향을 지닌 유사 행위자나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결국 물질적 생기란 물질에 내재적으로 실재하는 힘, 능력,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의 작용action은 곧 물질의 행위action이고, 물질적 생기는 그렇게 행위할 수 있는 능력, 즉 행위성인 것이다. 작용하고 행위하는 물질이 있다면, 물질적 생기도 있다.

51쪽 · 문규민, 〈물질의 행위생태학: 물物의 약동〉


피와 살과 수많은 신경 세포로 이루어진 여성의 ‘몸’을 살아있는 물질이자 유기체로 다시 사유하는 것, 몸의 자취를 다시 따라가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몸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 나아가 몸에 대한 대안적 설명을 진전시키는 것은 지난한 작업이지만, 남성 중심의 권력 체계와 그에 맞게 직조된 지식 체제에 미세하지만 효과적인 균열을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다. 그로스가 1980년대부터 착수해 1990년대에 꽃피운 이 험난한 작업은 약 30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81쪽 · 김지은, 〈다시, 그러나 다른 ‘몸’을 상상하기〉

타자기는 글쓰기를 탈성화할 뿐 아니라 손 글씨의 독특한 고유성을 표준화한 기계 활자로 대체함으로써 탈인격화한다. 타자기는 이렇게 개인의 특이성을 익명으로 사라지게 할 뿐 아니라, 문장들을 물질적 차원에서 각각 분리된 개별 철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언어가 영혼에서 비롯된 총체적인 사유를 밖으로 송출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던 손 글씨의 시대와는 다르고, 키틀러는 이에 따라 타자기와 뇌가 둘 다 뇌생리학적 기능을 갖춘 기계 장치의 제어 시스템이라는 동종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 키틀러는 “우리의 필기도구가 우리의 사유와 더불어 작업한다”(373쪽)는 니체의 말에서 한층 더 나아가 “정보 기술이 더 이상 인간에 환원될 수 없으며 […] 이제는 정보 기술 자체가 인간을 만든다”(375쪽)라고 주장한다.

152-153쪽 · 심효원, 〈20세기의 미디어 역사 / 21세기의 미디어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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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삶 | 신광복 외 11명 | ITTA | 296쪽 | 2만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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