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신속한 산재 처리가 졸속 인정으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최근 고용노동부는 근골격계질병 인정기준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직종, 근무기간, 유효기간 등을 충족하는 경우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업무관련성 현장조사를 생략하고, 신속한 산재 처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근골격계질병 산재 처리에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는 만큼, 개정안 인정기준은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누구나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불충분한 근거와 비논리적 내용으로 개정안이 마련된 것으로 보여 깊이 우려스럽다.

구체적으로, 고용부는 3차례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개정안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보고서에서는 직종별 인정기준 도출에 있어 직종 분류 및 선정, 근무기간 설정이 부적절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3개의 연구용역 보고서 모두 수집된 자료의 직종 분류가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새롭게 재분류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개정안을 적용할 때도 직종 분류에 자의적인 판단이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직종 선정기준으로 산재 신청 건수와 승인율을 제시하였지만 일관성 없이 적용돼 신뢰도가 떨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직종은 신청 건수가 1건에 불과했지만 승인율이 100%라는 이유로 적용대상에 포함됐다. 연구보고서에서 적용제외로 분류된 직종이 명확한 설명 없이 개정안에 포함되는 등 근거가 불명확한 직종도 확인된다. 나아가 3개의 연구보고서마다 직종 선정기준이 다르고, 과거 보고서에서 선정된 직종은 새로운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여전히 포함돼 있다.

특히, 고시 개정안은 노동강도 차이를 반영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같은 직종이라도 사업장마다 노동강도가 달라 근골격계질병 발생 여부가 달라질 수 있고, 직종 간 노동강도 차이도 존재하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수동작업을 실시하는 A공장 근로자와 자동화 설비를 갖춘 B공장 근로자의 노동강도는 전혀 다르다. 어깨 부위 회전근개파열의 경우 산재승인자 기준으로 주류 및 음료배달원 평균 종사기간이 9년이고, 타이어 제조업 근로자는 약 24.1년, 조선업 근로자 29.1년, 자동차 제조업 29.9년으로 나타나는 등 3배 이상의 큰 차이가 존재해 노동강도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고시 개정안은 일괄 10년으로 설정했다. 직종 간의 노동강도 차이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10년’이라는 종사기간 설정 근거도 비과학적이다. 경추간판탈출증(목디스크)도 10년 이상 종사한 경우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했는데, 산재 신청 근로자들의 평균 종사기간이 10년이라는 것이 이유다. 대표적 퇴행성 질환으로 40~50대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질환에 대해서 평균 종사기간을 기준으로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논리다.


고시 개정 추진의 기본취지는 산재처리의 신속성 제고에 있다. 그렇다면 신속한 산재처리 해법이 직종별 추정의 원칙 적용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직종별 추정의 원칙 적용방식은 노동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기업이 아무리 작업조건을 개선해도 직종이 동일하고 일정 기간을 근무하면 산재로 인정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나타난다. 따라서 기업은 작업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고, 작업자는 열악한 작업조건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고시 개정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작업조건 개선에 노력하고 있는 기업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종별 추정의 원칙 적용이라는 무리한 시도보다는, 재해조사 인력 확충과 인간공학기사·기술사를 비롯한 민간 전문인력의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의 검토를 통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D

우동필 동의대학교 인간시스템디자인공학과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