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루트] '문무 겸비 조선 화가' 창주(滄洲) 이성길
명나라 무이산 아홉굽이 경치 <무이구곡도>
임진왜란 대승 화폭에 담은 <쌍포승첩도>
포천시, 이성길 묘 향토유적 제54호 지정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창주(滄洲) 이성길(李成吉, 1562~1621)은 문무(文武)를 고루 겸비한 관료이자 화가로서 <무이구곡도> 등 시와 그림을 다수 남긴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자(字)는 덕재(德哉), 호는 창주(滄洲)이며, 고성(固城) 사람이다. 을사명현(乙巳名賢) 운손(雲孫)의 손자다. 호탕한 성품으로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아 17세에는 출입을 삼가고 독서에 열중해 경사(經史)에 통독했다고 전한다.
현내(縣內)명산촌에서 살았고, 가정(嘉靖) 기축년(1529)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고 같은 해 문과에 급제했다. 1589년(선조 22) 사마시(司馬試)에 장원해 진사가 되고, 이어 증광(增廣) 문과에 병과 15위로 급제했다.
특히 조선 중기에 조성된 이성길의 묘(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명산리)는 사대부 묘의 형식이 잘 갖춰져 있다. 묘소 앞 비석에는 신후재(申厚載,1636~1699)가 지은 묘지명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후손들의 관리로 원형 그대로 보존돼 학술적 역사적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이성길은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의병장으로서 1621년(광해군 13)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금교역(金郊驛)에서 60세로의 일기로 병사(病死)해 포천에 묻혔다. 그의 묘는 400년 간 후손들에 의해 관리돼 왔다.
이성길의 14대손 이각모 고성이씨 종중 회장은 "군내면 명산리 산 12번지 묘지와 138-1번지 묘비, 선정비 제각은 1621년부터 오랜 세월 보호하고 보존해 온 유산"이라며 "창주 공의 유·무형 민속자료와 함께 학술적·예술적·향토유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포천의 향토·토속·풍속을 연구하고 후세에 남길 필요한 유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성길은 임진왜란 때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와 함께 북관에서 앞장서 한 지역을 지켰다. 수도(首都) 수비를 맡은 유도대장 이양원 (李陽元)의 종사관으로도 참전했다. 한성이 함락된 후에는 정문부의 종사관으로서 의병활동에 동참해 전공을 세웠다.
함경도 일원에서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광해군 때 역적으로 몰리는 위기를 맞았고, 허균(許筠)과 김개(金?)는 능지처참당했다.
그의 벼슬은 참판(參判)이었으나, 영조 경신년(1740)에 사후 관직으로 이조판서를 받았다.
문무겸전의 관료로서 임진왜란 당시 전쟁터에서 그린 <쌍포승첩도(雙浦勝捷圖)>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그렸다는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는 그의 유명한 작품이다.
<무이구곡도>는 중국 남송 주자(朱子)가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 후학을 지도한 복건성 무이도의 전경을 그린 것이다.
중국의 복건성과 강서성 경계에 높이 1300m 무이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이 산맥 곳곳의 명승지 중에서 아홉 구비가 뛰어나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시대 무이구곡도의 발건, 전개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앞선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이 작품은 기다란 두루마리로 이뤄졌는데 그림 앞과 뒤에는 각기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와 주가의 <무의도가>가 적혀있어 형태에서도 이성길이 그린 목적과 의미가 잘 드러나 있다고 한다.
2015년 창주 공파 문중에서 이성길의 문집 『창주유고』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國譯)해 발간했다. 여기에는 이성길이 쓴 많은 시문들이 실려있어 그의 생애와 활동 등에 대한 많은 자료가 담겼다.
그가 34세 때인 1595년 鶴林寺(종실 출신 문인화가 이경윤으로 추정)의 부탁으로 인물, 산수, 모재(慕齋), 초목, 영모, 우마 등을 그려줬다는 글이 실려 있다.
이때 그린 작품들의 현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성길이 <무이구곡도> 이외 다양한 그림을 그렸던 문인화가였음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근거다.
고성 이 씨(固城 李氏)의 시조는 이황(李璜)이다. 『이 씨 추원록(李氏 追遠錄)』에 의하면 한나라 무제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이었던 이반(李槃)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뒤 눌러앉게 됐고, 이황은 이반의 24 세손이다.
이황은 고려 덕종 때 밀직부사(密直副使)였으며, 조선 중기 성리학자 퇴계 이황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다. 고려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거란군 침입 때 세운 공(功)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고, 철령군(鐵嶺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자손 가운데 포천 군내면 명산리 화암동에 15가구 89명이 살고 있으며, 약 150년 전부터 명산 마을 등을 중심으로 삶을 대대로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는 이성길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한편, 포천시는 창주 이성길의 묘를 포천 향토유적 제54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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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국 포천시장은 "포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한 것은 매우 뜻깊다"면서 "앞으로도 적극적인 문화유산 발굴과 보전을 통해 전통의 가치와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문화유산도시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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