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후피학살자 유족회 회장 윤호상] 과거사는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로지 유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가 분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2020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며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심어린 활동을 촉구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70여 명의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이며 예산과 인력을 독립적으로 편성, 진실규명작업을 하라고 조직된 기구이며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백화점처럼 문을 열어놓고 화려한 점포 디스플레이를 하며 유족들이 고객처럼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팔짱 끼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는 법이라고 잘못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슬픔과 분노가 교차(較差)하고 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한 지 보름이 넘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예방조치 때문에 유족회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서 전화로 유족과 상담하고 있다.

대부분 유족이 진실화해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모르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실규명신청을 받고 있는지 물어보는 유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간 벽촌과 지역에 계시는 연로한 유족들도 있지만, 비교적 젊은 50~60대 초반의 유족 2세들도 포함돼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동안 유족 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하시다 유명을 달리한 유족님들의 후손들이 많았기 때문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들은 혹여 유족 활동이 자식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 자신의 활동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사실을 말을 하지 않았다.


서슬 시퍼런 연좌제(緣坐制)의 공포가 유족들을 평생 옥죄고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트라우마(trauma) 증세는 모든 유족이 겪고 있는 아픔이다.


거제지역의 한 유족 자매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 “한국전쟁 때 아버지(교사)와 삼촌(학생)이 경찰에 의해 거제 지세포 앞바다에서 수장(水葬)당했는데 당시 언니는 네 살이고 본인은 유복녀(遺腹女)이기 때문에 고모(姑母)로부터 들은 이야기다”며 “고모님은 연로해 복지시설에 있어 신청할 수 없는 형편이다”고 말했다.


또 한 분은 통일운동을 하시다가 지난해에 운명하신 김 모 고문님의 이야기다. 부산 서구 동대신동 골짜기에서 학살당하고 앞바다에 수장(水葬)됐다.


수소문 끝에 통화가 이뤄진 아드님은 “진실화해위원회 출범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며 설명 듣고 “진실규명신청을 하겠다”고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했다.


화순군에서 6명이 집단으로 학살당했던 박선규 광주지부장은 대장암 투병 생활을 계속하다 지난해 7월 결국 운명했다.


그는 투병 중에도 과거 사법 재개정 투쟁에 사활(死活)을 다했다. 아드님에게 연락해 진실규명 신청을 광주 동구청에 접수하게 했다. 아버님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더욱더 애처로운 사연의 주인공이 있다. 96세의 이종금 할머니 이야기다. 비극의 한국전쟁은 이종금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앗아 가버렸다. 남편과 친정아버지, 작은아버지를 경찰에 의해 학살당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친정아버지와 숙부는 진실규명결정문을 받았지만, 재판도 하지 못하고 소멸시효가 초과해 배상도 받지 못했다. 정작 남편은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자식이 없으면 못 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청상과부(靑孀寡婦)로 75년을 살아오셨다. 자식 일가친척이 없어 독거(獨居)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유족회에서는 부산 이춘근 상임대표와 문광현 부산지부장에게 연락을 취하게 해 진실규명신청작업을 도와드리고 부산 동구청에 접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구절절한 애달픈 사연이 줄을 잇는다. 유족회에서는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소식지와 지역조직·카페홍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나설 때다. 보름이 넘었다.


진실규명신청이 지지부진하다. 부진한 내용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돼 있다. 과거사 법안의 부실함과 홍보 부족·미래에 대한 불확실성·후손들에게 불행의 대물림 등이다.


가장 큰 요인은 홍보 부족이다. 아니, 부족한 것이 아니라, 완전 홍보 제로 상태이다.


1기 위원회의 미진한 부분을 혁파(革罷)하고 더한층 진실규명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유를 부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구성원 모두 눈에다 불을 켜고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실화해위원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초보자도 그렇게 제작하지 않는다. 국가기구의 홈페이지는 공신력이 담보되고 홍보 수단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능력이 있는 보좌관과 홍보팀을 채용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야 한다. 국회로, 정부로, 유족회로 지평(地坪)을 더 넓혀야 한다.

진실규명의 첫 작업은 홍보(弘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인학살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았던 공포감을 해소해 주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 공영방송과 종편 방송, 일간지 신문을 통해 진실규명 신청 대상자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다는 보도를 머리기사로 방영하고 자막(字幕)으로 끊임없이 신고 마지막 날까지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숨어있는 유족들을 사회로 나오게 해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와 지역방송과 지역일간지에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신청내용을 홍보하고, 동(면), 통, 리의 조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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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진실화해위원회가 수평선을 박차고 떠오르기를 기대한다. 오늘도 유족들 전화 문의에 하루 해가 저물어 갈 것이다.


호남취재본부 김춘수 기자 ks7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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