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시인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왜'라고 의문 갖지 말기를"
시와 산문이 함께 실린 시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발표
시를 쓴 배경 함께 실어…시가 어렵다는 이들에게 도움 되길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정호승 시인은 2000년 가까운 벗들과 북인도로 불교 4대 성지순례 여행을 떠났다. 웅대한 건축물을 기대하며 부처가 태어난 룸비니를 방문했다. 실망스러웠다. 룸비니는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있고 철조망이 둘러쳐진 마야데비 사원은 작고 초라했다. 한 노파가 사원 정문 앞에서 흙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부처님 순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시인은 아쉬운대로 기념품을 사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바라보며 편안함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되레 자칫 잘못해 부처님을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나면 어쩌나 싶었다.
안절부절하던 어느날 시인의 시적 상상력 속 부처가 나타나 시인에게 꿀밤을 쥐어박았다. 시인은 그때 얻은 깨달음으로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썼다. "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산산조각이 나면/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 시인은 시 산문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비채)'의 첫 번째 시로 '산산조각'을 소개한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운문(시)과 산문이 함께 실린 책이다. 최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시인은 1972년 등단해 지금까지 1000편이 넘는 시를 발표하고 시집 13권을 냈다. 그 중 시 60편을 엄선해 이번 책에 담고 그 시를 쓰게 된 사연은 산문으로 풀어냈다. 산문집도 다수 발표한 시인은 시와 산문이 함께 실린 책을 이번에 처음 냈다. 그는 "시가 있는 산문집이기도 하고 산문이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시는 시대로, 시를 쓰게 된 계기나 이야기들은 산문집으로 따로 엮었다. 어느 시점에서 시와 산문은 별개의 장르이긴 하지만 영혼과 몸처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하나다. 시를 쓰게 된 계기와 시를 같이 묶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 책을 냈다."
시가 어렵다고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요즘 다들 시가 어렵다, 이해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시를 쓰게 된 배경과 시를 한 상에 같이 차리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목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노래한 시인의 대표시 '수선화에게'에서 나왔다. 시인은 책에서 '수선화에게'를 두 번째로 소개한다. '수선화에게'를 쓴 계기에 대해 밝힌 산문은 '나는 언제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인데 그 본질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 인간이기 때문에 죽음도, 외로움도 존재한다. 외로움을 본질이라고 생각하며 긍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본질이라고 생각하면 고통과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 외롭지만 이해함으로써 외롭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해를 통해 외로움을 긍정하는 것을 책을 통해 나누고 싶었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인의 불유구(不有懼·고희)를 기념하는 책이기도 하다.
"내 자신도 모르게 올해 이미 칠십이 됐다. 연초에 시집을 출간했고 연말에 가까운 지금 칠십 기념 산문집도 출간하게 됐다. 물리적 나이를 스스로 기념하는 것은 소중하다. 인간이 영원히 살지 않으므로 긍정적인 의미에서 정리할 것들은 정리함이 좋다고 생각했다."
시인은 책에 자기의 삶을 담았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사진 20여 장을 실었다. 자신이 등단한 1970년대도 돌아봤다.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시대였다. 20대였던 나는 이 시대의 눈물을 닦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 사회와 이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내가 죽고나서도 이 시대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들이 끊임없이 태어날 것이다. 이제는 나라는 인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생각한다. 내 존재의 눈물을 닦으며 쓴 시가 다른 사람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시인은 자기가 시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라며 자기 묘비명에 '시인'이라는 단어를 꼭 넣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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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산문집 작업의 절반만 이번 책에 담았다며 나머지 한 권 분량의 원고는 적당한 기회에 비채를 통해 출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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