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되감기]안희정 유죄…'위력·성인지감수성' 사회 미칠 파장은
대법, 안 전 지사 징역 3년6개월 원심 유지
위력에 의한 성폭력 및 강제추행 인정
'피해자다움'은 없다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유죄가 9일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같은 혐의에 대해 1심 전부 무죄 선고 후 2심에서는 일부 유죄, 징역 3년 6개월이라는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면서 논란이 된 사건입니다. 1심에서는 '위력은 존재했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무죄가 선고된 반면 2심에서는 9건의 성폭력(위력에 의한 성폭력 및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3심에서도 원심이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서 판이한 결론이 도출된 것은 크게 두 가지, 피고인이 업무상 위력으로 피해자를 간음 및 추행했는지 여부와 성인지감수성에 입각한 피해자 진술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2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피해자 김지은 씨가 사적인 관계라고 볼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가 공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경위, 피고인과 피해자 간 특별한 유대 관계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 봤을 때 안 전 지사와 김씨 간 공적 관계가 사적 관계로 변화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죄 구성요건= 김씨와 안 전 지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 씨는 안 전 지사의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캠프에 합류해 일을 하다 2017년 7월 충청남도 지방별정직 6급 수행비서로 일을 하게 됩니다. 2심 판결문에 따르면 경선 캠프 구성원들은 안 전 지사가 대통령에 선출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삼고 무보수 자원봉사 형태로 업무를 했습니다. 안 전 지사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전제로 단기간 내 지지세력 결집과 득표율을 위해 모인 만큼 상명하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런 분위기는 경선 캠프 관계자들이 도청에서 정무적 업무를 하는 공무원으로 대거 이동해 근무하게 되면서 그 중심이 되는 비서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더욱이 별정직 공무원이었던 김씨는 일반적인 직업 공무원과 달리 신분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지방별정직 공무원 인사규정 제3조, 제12조에 의해 지방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자치단체 소속 별정직 공무원의 임명·휴직·면직과 징계를 하는 권한을 갖고, 지방별정직 공무원으로 비서에 임용된 경우에는 임용 당시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사임 또는 퇴직할 때 함께 면직되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캠프 출신 수행비서였던 김씨에게 안 전 지사의 위력은 성적 자유의사 결정권에 반할 정도로 컸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물리적인 힘을 발휘하지 않아도 안 전 지사는 정치·사회·경제적 지위나 권세 등을 이용한 무형의 힘을 김씨에게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김씨보다 20살 이상 연상의 유부남이었던 안 전 지사가 김씨의 의사나 감정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지속적으로 미안하다고 한 점, 사건 전후에 서로 간 이성적 관심을 보였거나 교감을 했다는 자료가 없다는 점 등도 위력에 의한 성폭행에 무게가 실렸던 까닭입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 관계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상고심 판결이 내려진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법원은 안 전 지사에 대해 2심이 선고한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판단해야= 판결을 가른 또 하나의 기준은 성인지 감수성입니다. 성폭력 사건 대부분은 피해 당사자의 증언에 의해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양성평등기본법에 보장된 성인지 감수성입니다.
김씨가 피해 사건 다음날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 식당을 알아보거나 안 전 지사 부부 등과 함께 와인바에 간 점, 안 전 지사가 이용하던 미용실에서 자신의 머리를 손질하면서 "일 하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김씨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지적을 당해왔습니다.
그러나 수행·정무비서였던 김씨는 안 전 지사의 각종 회의, 행사, 국내외 출장 일정 등을 사전에 조율하고 관리하는 공적인 업무는 물론 담배·맥주 같은 기호품 구입이나 전달과 같은 사적인 용무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김씨는 이번 문제가 알려질 경우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하겠다'는 결정을 하기 이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입니다. 2차 피해나 성폭력 피해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피해자의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지도 모름을 짐작해 봅니다.
대법원도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해자 중심의 문화, 인식, 구조에 의해 사건이 알려진 후 피해자 신분 노출이나 부정적 여론에 의한 2차 피해가 가해질 수 있는 점 등을 미뤄볼 때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김지은' 없어야=최근 신입사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한샘 전 교육팀 직원이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해당 직원은 신입사원과 주고받은 메시지 등을 제시하며 친밀한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 교육 담당자에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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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전 지사의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 사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피해자 김씨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마땅한 결과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파하며 지냈는지 모른다. 진실이 권력과 거짓에 의해 묻혀 버리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날까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제발 이제는 거짓의 비난에서 저를 놓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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