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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누구를 위한 자사고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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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도 자사고 지정 취소를 받아 지금처럼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여론이 들끓었어요. 결국 나라(교육부)에서 그 결정을 취소시켜 자사고 자격을 유지했고, 3년 후 우리 아이도 같은 학교에 진학했는데,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난거죠. 몰랐냐고요? 지난 5년간 학교는 정상적으로 잘 운영돼 왔잖아요? 그런데 손바닥 뒤짚듯 정책이 바뀐거라고요."


한낮의 덥고 습한 열기에 달궈진 아스팔트는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종이모자로 간신히 얼굴만 가린 채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침묵시위를 이어가던 한 학부모는 "솔직히 우리 아이야 곧 졸업하면 끝날 일이고, 학교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리 애닯아할 것도 없다"며 "하지만 이 땅의 학부모로서 초ㆍ중ㆍ고 12년간 겪은 교육정책은 늘 아이들을 흔들고 부모들 속을 뒤집어 놨다"고 토로했다.

자사고를 일반고로 강제 전환하는 게 옳은가 잘못됐는가 판단은 일단 제쳐두자.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는데 교육정책도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십분 동의한다. 하지만 자사고 재지정평가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교육당국의 행보는 못내 실망스럽고 아쉽기만 하다.


일단 대통령이, 교육감이 자사고ㆍ외고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 왔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 정부가 어떤 미래교육 청사진을 갖고 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과제들을 이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교육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학생과 학부모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빠졌다. 지금 자사고를 다니는 학생들도, 자사고에 진학하려 했던 학생들도 모두 혼란스럽다.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됐다'는 주장은, 훌륭한 일반고마저 열등한 학교로 전락시키거나 '자사고만 폐지하면 일반고가 저절로 좋아지느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특권 학교를 폐지하고 평등한 교육을 실시하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던 만큼 행정적 노력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교육감의 주장도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행에만 방점이 찍혔다. 공교롭게도 5년 전 평가에서 탈락했던 자사고들이 우선 퇴출될 것이라는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자사고 논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교육수장들의 언행은 학생들 귀에 들어갈까 부끄럽기까지 했다. 특정 자사고를 향해 '귀족학교', '의대 입시학원'이라는 비난을 퍼붓던 교육감도, '재벌 자녀와 택시운전사 자녀가 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또 다른 교육감도 표현에 좀 더 신중해야 했다.


자사고 폐지가 교육자로서 소신이고 철학일 수 있지만 정치인 출신 교육부장관과 선출직 교육감들에겐 또다른 계산이 깔린 것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공정성을 강조해도 깜깜이 평가과정 그 어디 쯤 정치적 판단이 어느정도 개입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없는 학창 시절이요, 평생의 진로를 좌우할 입시와 직결되는 문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교육정책이 또다시 학생과 학부모, 학교 현장의 불신과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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