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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덴마크 공공임대주택의 휘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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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식 행복법 '휘게(hygge)'는 성장과 경쟁,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돼 정작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일면서 전 지구촌을 '행복' 열풍으로 이어지게 했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상태를 뜻하는 휘게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소박한 삶의 여유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이러한 휘게 라이프는 유엔(UN)이 2012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세계 행복지수에서 덴마크가 매년 1, 2위를 석권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덴마크는 주거복지도 남다르다. 값싸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데 자격을 따지지 않는다. 보편적 주거복지를 지향한다. 공공임대주택은 누구나의 집이자 다수를 위한 집으로 통한다. 덴마크는 공공임대주택을 다른 유럽 국가에서의 소셜 하우징이 아니라 알민 볼(almen bolig)이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공익 주택(common housing),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집을 말한다. 그래서 공공임대주택에 문제가 발생할 때도 사회 전체가 머리를 맞댄다. 음주나 소란 행위, 폭행 등이 발생하면 해당 단지의 공급자는 동네 주민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청한다. 동네 문제이기 때문에 경찰 우선보다는 주민 연대 의식으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의 입주자들은 매달 임대료에 장래 수선유지와 개ㆍ보수, 단지 재생을 위해 일정 예치금을 납부한다. 이 돈은 공급자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건설기금(National Building Fund)으로 흡수된다. 공급자별로 단지별로 관리되고 쓰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관리되어 개ㆍ보수나 재생이 필요한 단지에 우선 투자된다. 누군가 단지 내 공간이나 기물을 파손할 경우 그 책임은 입주자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한다. 입주자 민주주의를 표상하며 연대 의식과 연대 책임을 진다. 지금껏 보편적 주거복지 모델이 이어져 올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공공임대주택은 차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꿈을 키우고 휘게 라이프를 펼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겔데캐아봐이(Gadekjaervej) 단지의 한 벽면에는 입주민들의 꿈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나는 루바 케이크를 햇빛 아래서 꿈꾼다. 나는 가을과 겨울에 대해 꿈꾼다. 나는 청년 교육 수업에 내 자리가 있기를 꿈꾼다. 나는 뒤뜰에서 아이들과 바비큐 파티를 꿈꾼다." 대부분이 집합주택 형태인 덴마크의 공공임대주택은 뒤뜰이나 중정형의 녹지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이다. 1층에는 대개 입주민 공용 공간이 있으며 1층 거주자는 뒤뜰 공간의 일부를 향유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공공임대주택의 외관 디자인은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은 것이 없으며 누가 공급했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다양한 소득계층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사는 소셜 믹스를 추구하지만 취약계층의 보호를 위해 지자체가 입주자 중 25%는 직접 선정하고 있다.


우리의 공공임대주택은 무엇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인가?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사회적 니즈만에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소셜 믹스를 추구할 것인가? 그동안 한국형 공공임대주택이 어떤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없었다.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했기에 공급 그 자체가 과업이고 목표였다. 그러나 100만가구를 넘어 곧 200만가구에 이를 공공임대주택은 이제 입주자의 꿈이 깃든 삶의 행복 방정식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경기도의 한 국민임대주택 단지 1층의 주민 공용공간의 벽에 걸린 초등학생의 그림 논술 작품에 쓰인 "검은색이 흰색으로 못 돌아가는 것처럼 다친 마음도 원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글귀가 아직도 생생하다. 꿈을 꾸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아이들이 차별받지는 않는 그러한 공공임대주택이 되기를, 우리 사회 전체의 연대 의식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진미윤 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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