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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무엇을 위한 화폐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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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학에서 화폐는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 가치의 저장수단 그리고 회계의 단위로서의 기능을 갖는 무엇인가로 정의한다. 정의로부터 기능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살펴 화폐를 정의하는 것이다.


경제의 분석에 사용되는 실증적 화폐의 정의에서 중요한 개념이 유동성이다. 유동성은 어떤 자산이 '손해 봄이 없이 즉각적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한 좁은 의미의 화폐와 교환될 수 있는 정도'로 정의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는 유동성이 100%이고 요구불예금은 현금화하기 위해 금전적 손해를 보지는 않지만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유동성이 그보다 낮다. 그리고 정기적금과 같은 저축성예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발품뿐만 아니라 위약금을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요구불예금보다 유동성이 낮다.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부터 낮은 자산으로 화폐의 실증적 정의를 확대함으로써 분석의 목적에 맞는 화폐의 데이터를 얻는다.

작금에 화폐개혁 곧 화폐단위의 변경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논의의 핵심은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이 1000원이 넘어가니 후진국 형이고 창피하다는 것이다. 창피하니 화폐개혁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화폐개혁의 논리다. 화폐개혁은 화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원화가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가치의 저장수단으로 나아가 회계 단위로 사용되는 데 문제가 있는가? 적어도 처음 두 기능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단위가 커서 회계가 어렵다? 그도 아닌 것 같다. 회계장부에 올리는 숫자는 정의하기 나름이다. 예를 들어 1000원을 1.0으로 정의하면 그만이다. 적지 않은 커피 집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 화폐가 기능을 상실했을 때 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화폐개혁이 대표적이다. 빵 한 조각을 사기 위해 리어카에 화폐를 가득 싣고 가는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는 말인가? 물가상승률이 낮고 때로는 마이너스이기 때문에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마당에 화폐개혁이라니! 오히려 그런 논의가 오가는 것이 창피하다.


국회에서 화폐개혁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님들 정신 차리시라. 지금 이 나라의 경제 문제는 화폐단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교육, 규제 등 제도와 실물부문에 있음을 왜 인지하지 못하는가. 그대들이 할 것은 이런 개혁을 위한 입법이지 화폐단위나 가지고 토론회를 열어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고담준론을 나눌 때가 아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여기에 한국은행 총재는 화폐개혁을 논의할 때가 되었다니.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따져 보기라도 하고 그런 발언을 한 것인가? 대미환율이 높은 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인플레이션이 미국의 그것보다 높았기 때문인데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지도 못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최근 화폐개혁은 1962년 군사정부에 의한 것이었다. 장롱에 숨겨져 있는 자금을 끌어내어 산업자본으로 쓰겠다는 의도였다. 화폐와 전혀 관계없는 목적으로 화폐개혁을 한 것이다. 장롱 속에 숨겨진 자금이 많지 않음이 드러났다. 당연히 실패했다. 그리고 그 대가가 적지 않았다. 범죄와 관련된 자금이 아니고서야 장롱 속에 숨기는 모자라는 인사가 몇이나 될까? 화폐개혁은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요소가 다분할 뿐만 아니라 비용 또한 적지 않게 소요된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포퓰리즘 때문에 시들어가는 경제에 뜬금없이 화폐개혁이라니. 자신 있으면 한 번 해 보시라.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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