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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노의 당파성과 공정성

최종수정 2019.06.18 12:00 기사입력 2019.06.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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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조(論調)가 상반되는 신문들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들은 분명히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관점에서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생각의 저울'의 추를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고, '판단의 잣대'를 공정하게 견지하기 위한 오래된 습관이다. 쉽게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려는 중립적 신중함이 때론 무너지기도 하고, 회색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비난을 감내할 용기와 인내심이 흔들릴 때도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치권에 대한 분노와 혐오로 들끓고 있다. 그 누구도 저러한 분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분노조절 장애를 겪고 있다. 혹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과 글들은 경청하며 무조건 지지하고 공유한다. 하지만 반대의 노선에 있는 사람들은 얼굴도 보기 싫어하고 목소리도 듣기 싫기에 채널을 돌리거나 아예 외면해버린다. 서로가 살기(殺氣)를 띠고 적대시한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 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에게 그러면 되겠느냐'라고 묻는다. 그런 '좋은 소리'는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얼굴을 붉힌다. 이제 모든 것이 분노의 대상이 돼 걷잡을 수 없는 화염처럼 타오른다. 이런 분노와 혐오를 부추기는 '분노의 정치'는 '분노의 공화국'을 만든다.

서로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적대시한다. 양자는 적대자로부터 현실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서 그들의 잘못과 위선과 배신에 분노한다. 상대가 역사를 왜곡하고, 팩트를 속이고, 실정법을 무시하며, 국제관례를 어기고 있는 생생한 실례와 사례들을 폭로한다. 더욱이 국민을 속이고 우롱하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나 자기편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상대방의 선의와 좋은 정책을 본받고자 하는 의지, '내가 먼저 잘하자'라는 솔선수범 또는 '함께 잘해보자'라는 공존과 화쟁(和諍)의 논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독선적 확신과 당파적 혐오에 사로잡혀 상대를 능멸하고 굴복시키는 것이 각 진영의 존재 이유가 된다. 양쪽 모두가 싫어 냉소와 정치적 무관심으로 도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양 진영의 논리에는 공통점이 많다. 각각 상대방을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서 역사의 진행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이라고 여긴다. 정도의 차가 있지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임에도, 어느 곳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조건만 주어지면 동일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별수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를 희생양으로 삼고 적대시해 대중적 분노를 불러일으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건다. 그러나 '분노의 이중 잣대'가 여기에 작용한다. 상대편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있으나 내 편의 잘못과 불의에 대한 분노는 없고 지나치게 관대하다. 정녕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상생과 공존을 위한 '적과의 동침'과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정당한 공적 분노는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독재, 인권유린, 폭력, 사회악에 대한 분노는 필요하다. 그러나 화쟁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려는 역지사지, 그리고 나와 생각은 다르지만 화목할 수 있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모두에게 요청된다. 모름지기 우리가 염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를 죽이기 위한 편향된 '당파적인 분노'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공정한 분노'가 필요하다.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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