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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26세 최연소 선장' 세계 바다 누빈 김재철의 아름다운 50년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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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가 그룹 변화와 혁신 이끌어야 한다고 판단
‘재계의 신사’, 성실과 정도의 길…원칙과 정도 경영 매진
1991년 증여세 최대금액 자진 납부…인재육성에 공헌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회장.

1969년 8월 동원의 최초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어식에 참석한 김재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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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전라도 강진의 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는 생각을 갖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산 국립수산대학교(현 부경대) 어로과에 들어갔다. 좁은 국토와 자원이 없는 국가에서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공부를 하면서 국내 수산업계의 낙후된 현실에 좌절했고, 원양으로 나아가겠다는 큰 꿈을 키워나갔다.


1958년 국내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가 남태평양 사모아로 출항한다는 공고를 보고 선장을 찾아가 사고를 당해도 원망하지 안겠다는 야심찬 서약을 하고 실습 항해사로 승선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무급으로 일한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학생은 청년이 됐고, 26세에 우리나라 최연소 선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바다에서 청년은 '캡틴 제이 씨 킴(Captain J. C. Kim)'으로 불렸다. 참치를 가장 잘 잡는 선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면서 세계 수산업계에서 하나의 유명 브랜드가 됐다. 청년은 35세이던 1969년 일본 상사인 도쇼쿠로부터 지불보증 없이 500t급 연승어선 '제31동원호'와 '제33동원호'를 현물차관으로 도입, 어획으로 갚는다는 조건으로 동원산업을 세웠다.

30대 중반에 창업한 회사는 어느덧 창립 50주년을 맞았고, 청년의 나이는 85세가 됐다. 회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활기업(동원그룹)과 증권기업(한국투자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는 회사를 이끌어온 지 50년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얘기다.


16일 경기 이천의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 회장은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선다"면서 "활약상을 지켜보며 응원할 것"이라고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목소리는 가끔 떨렸지만, 표정은 담담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최빈국이었던 시절에 젊은날을 보내며 '사업보국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데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머리속에 스치는 듯 때때로 읽기 어려운 표정도 지어 보였다. 그는 오래전부터 퇴진을 준비해왔다. 창업 세대로서 소임을 다했고, 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하는 김재철 회장.

동원그룹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하는 김재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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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까지 김 회장 사퇴는 일부 고위 임원만 알고 있어서 행사에 참석한 일반 직원은 충격을 받았다. 눈물을 흘리는 직원도 제법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정도(正道)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이끈 창업 1세대다. 창업 세대가 명예롭게 자진 퇴진하는 사례가 그 동안 거의 없기 때문에 50년 경영을 뒤로 하고 물러난 그의 마지막 인사 자체가 정도 경영의 표본이 되고 있다.

김 회장의 별명은 재계의 신사다. 창업 후 50년의 세월 동안 성실하고 치열하게 기업 경영에만 몰두했고 정도 경영의 길만을 걸어왔다는 게 재계 평가다. 50년 전 창업 당시 직접 만든 사시 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의 실현'을 보면 그의 경영철학을 알 수 있다.


'기업인이라면 흑자경영을 통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고용창출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경영에 매진했다.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냈던 해에는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일절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경영에만 전념했던 일화도 있다. 또한 1998년 IMF외환위기를 비롯해 공채제도를 도입한 1984년 이후 한 해도 쉬지 않고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3800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한 일화도 그의 정도 경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히며 주요신문들에서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거꾸로지도 앞에 선 김재철 회장.

거꾸로지도 앞에 선 김재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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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육성에 대한 남다른 의지도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양어선 선장이던 시절부터 고향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김 회장은 창업 10년인 1979년에 자신의 지분 10%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대기업조차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예가 드물던 시기였다. 이후 40년간 약 420억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지급했다.


자녀 교육에도 예외는 없었다. 김 회장은 두 아들 모두에게 현장 경험을 시켰다. 장남에게는 명태잡이 어선을 약 6개월 정도 태웠고 차남에게는 참치캔 제조공장에서 경험을 쌓게 했다. 경영자가 현장경험을 해봐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과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원칙을 철저히 하는 정도 경영을 50년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원칙이나 정도를 지키는 것이 때로는 고단하지만, 훗날 편안함을 준다"는 게 그의 인생관이다. 직원들에게도 '원칙을 철저히, 작은 것도 소중히, 새로운 것을 과감히'라는 행동규범을 강조하며, 이를 기업의 문화로 만들었다. "역량을 십분 발휘해 더욱 찬란한 동원의 새 역사를 써달라"는 그의 당부에 임직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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