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요일에 읽는 전쟁사]中 탄압받는 '위구르족', 당나라 때는 정반대 상황이었다고요?
당나라 '안사의 난'을 틈타 중국 전역을 약탈
당나라 덕종에게 춤을 춰보라며 모욕을 주기도
탄저병에 위구르제국 붕괴된 이후 역사의 주역에서 내려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흔히 '중국의 로힝야'라 불리는 위구르족은 현재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속해있으며, 중국으로부터 무장독립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심하게 탄압받고 있는 소수민족으로 알려져있다. 최근 미·중 무역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한 축으로 사용하기 위해 상·하원에서 초당적으로 위구르족의 탄압을 제재할 법안을 만들어 국제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위구르족의 세력이 강성하던 서기 8~9세기, 중국의 당(唐)나라 시기에는 중국과 위구르의 관계가 지금과 정반대 상황이었다. 위구르족은 물자 약탈을 위해 주기적으로 당나라의 대도시를 약탈하거나 공물을 뜯어갔고, 당나라의 왕족들까지 능욕할 정도로 중국을 업신여겼었다. 이들이 세웠던 위구르 제국은 한때 몽골과 중앙아시아 스텝 유목지대 전역을 장악, 광대한 영역을 다스리던 대제국이었다.
위구르족은 원래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으로 중앙아시아 스텝지역에 퍼져 살다가 744년, 돌궐제국을 무너뜨리고 위구르 제국을 건설했던 민족이다. 이때 유목지역의 패자가 된 이들은 오늘날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뿐만 아니라 몽골,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터키, 러시아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 거대했던 위구르 제국이 탄생한 직후, 때마침 당나라의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면서 위구르가 중국을 제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당나라의 전성기가 막을 내리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던, '안사의 난(755~763)'이었다.
타클라마칸 사막 북동쪽 일대 위치한 베제클리크 천불동 석굴에 그려진 위구르족의 모습. 이들은 8~9세기에 걸쳐 중앙아시아 스텝지역 전체를 다스리는 대제국을 세웠고, 위구르제국 설립 직후 발생한 당나라 '안사의 난'을 이용해 중국 전역을 약탈하기도 했다.(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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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으로 수도 장안까지 잃었던 당나라는 정규군이 이미 붕괴된 상태였기에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에 따라 위구르제국에 군사원조를 요청한다. 위구르제국은 여기에 응해 만리장성 이남으로 군대를 파병, 안록산과 뒤이은 사사명의 난을 진압하는데 앞장서지만, 당나라군이 빈껍데기만 남은 것을 확인한 이후 안사의 난 토벌보다는 대도시 약탈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특히 대도시 낙양을 함락시킨 이후 대대적 약탈과 살육을 자행, 수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나라 황족을 욕보이기까지 했다. 당시 옹왕(邕王)으로 훗날 당나라 황제인 덕종(德宗)이 되는 이괄에게 위구르의 칸이 숙부를 위해 춤을 추라며 모욕을 했으며, 옹왕이 이를 거부하자 그의 신하에게 채찍을 쳐 죽이는 등 수모를 안겨줬다. 다만 위구르족들은 유목민 특유의 문화에 따라 자신들이 점령한 중국 대도시들에 대한 직접 통치를 시도하지는 않았고, 당나라로부터 막대한 공물을 받으며 필요할 때마다 물자를 얻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경제적인 전쟁만을 선호하게 된다.
이토록 당나라를 멸시하며 탄압하던 위구르제국의 발목을 잡은 것은 어이없게도 '탄저병'이었다. 탄저병은 주로 초식동물에게 패혈증을 일으키는 무서운 병으로, 동물의 털과 접촉할 경우 사람에게도 옮기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839년부터 840년대 중앙아시아 일대를 뒤흔든 탄저병은 유목민족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며, 가축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경제와 생계는 완전히 무너져내리게 된다. 여기에 남시베리아 일대에서 그들과 경쟁하던 키르기스족까지 쳐들어오면서 당나라를 탄압하던 위구르제국은 완전히 멸망하게 됐다.
18세기 청나라와 준가르제국간 교전을 그린 그림. 준가르족은 몽골 오이라트계열 종족으로 오늘날 신장위구르자치구 일대에 거대한 제국을 세우고 위구르족을 통치했으나, 청나라의 인종청소에 가까운 토벌작전으로 멸망하고 이후 이 지역엔 위구르족들이 많이 살게 됐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이후 위구르족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주역으로 등장하지는 못하고 거란, 여진족, 이후 초원의 지배자가 된 몽골족 등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10세기경 위구르족들은 대거 이슬람교를 믿게 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완전히 중국 영토로 넘어오게 된 것은 1759년, 청나라에 의해 이 지역에 세워진 마지막 유목민족의 제국이던 준가르 제국이 무너진 이후부터였다. 준가르제국은 원래 몽골 오이라트계열 종족인 준가르족이 세웠던 제국으로 위구르족을 복속시켜 다스리고 있었으나, 청나라의 인종청소에 가까운 대토벌로 거의 멸족되고, 이후 이 지역에는 위구르족들이 다수 종족이 됐다.
이후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청나라가 허약해지자 40여차례에 걸쳐 반란이 일어난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부터 청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반발은 더욱 거세져, 1864년에는 청나라가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하기도 했다. 이 혼란을 틈타 중앙아시아 코칸트 칸국의 장군이던 야쿱 벡이란 군벌이 이 지역으로 들어와 카슈가리아 왕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이슬람 근본주의적 폭정을 펼친다. 여기에 위구르족들이 다시 반발하고, 청나라도 흠차대신 좌종당을 앞세워 토벌군을 파병, 1875년~1877년 사이에 토벌에 성공하면서 다시 청나라 영향 하에 놓이게 된다. 청나라가 여기에 신경쓰는 사이, 일본의 동아시아 팽창정책이 시작되고 대만 병합과 조선 개항 등이 시작돼 동아시아 전체 판도에도 큰 변화가 시작된다.
청나라는 이후 러시아와 국경분쟁이 심화되는 와중에 이 지역의 영유권 확보를 위해 신장성(新疆省)을 설치하고 직접 지배에 들어갔지만, 1912년 청나라가 무너지면서 이 지역은 다시 독립의 열기에 휩싸이게 된다. 1차대전 종전과 공산혁명의 열기 속에 위구르족들은 이 지역에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란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노력했지만, 2차대전 전후 중국에 세워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소련간 협상에 따라 이들의 독립운동은 수포로 돌아간다. 1955년부터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설치되며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 지배가 시작됐으며, 중국의 강경정책 속에 100만명이 넘는 위구르족 주민들이 강제수용소에 갇혀있는 신세로 전락했다. 당나라를 유린하던 조상들의 기개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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