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까? 썩은 가지는 떨어져 부서지고,
 목이 없는 해바라기 대궁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발아래
 부서지는 서릿발
 장다리꽃 필까? 얼음 박인 봄동

 밤나무 가지에 비닐 걸려 날리고,
 다시 싹틀까?
 저수지
 살얼음 위에 날리는 눈발


 물오를까? 뒹구는 새의 부러진 뼈
 머리는 부리를 달고
 육탈을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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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날아오를까, 연두는
 우화(羽化)처럼


 
■춥다. 한낮에도 영하다. "썩은 가지는 떨어져 부서지고" "살얼음 위"엔 "눈발"이 날린다. 물론 명년이면 봄이야 당연히 돌아오겠지만 온통 꽁꽁 얼어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자면 당장은 봄이 "다시 올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게 사람 마음이다. 시인도 그런가 보다. 각 연마다 "다시 올까?" "장다리꽃 필까?" "다시 싹틀까?" "물오를까?"라고 묻고 있으니 말이다. 어라, 그런데, 마지막 연의 "날아오를까" 다음에는 물음표가 없다. 왤까? '-ㄹ까'는 두 가지 맥락으로 쓰인다.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한 '물음이나 추측'을 표시하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일에 대하여 '상대편의 의사를 묻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연은 '연두야, 우화처럼 다시 날아올라 볼까'라고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나뭇가지마다 틈틈이 연두들이 속닥거리는 것만 같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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