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이 좋다
 이리저리 찔러도 캄캄한 도토리묵
 기포가 터지면서 얼굴을 때리는 그 뜨거운
 묵 솥을 휘휘 휘저을 때
 당신을 위해 집을 짓겠소
 속삭임까지 훅훅 뜨거운 묵이 좋다
 어차피 들어가 살지도 못할 집
 그래도 피피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다짐한다
 어떤 그릇이라도 내밀어 봐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지어 줄게요
 내 집이 아닌 걸 모를 리 없는 묵은
 어떤 선심처럼 억지처럼 검게 바닥부터 타들어 간다
 휘휘 마음대로 저을 수 없는 앙금들이
 눌어붙기 시작할 때

[오후 한 詩]묵/천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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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을 끈다
 별빛을 다 담지 못하는 수천 개의 호수들처럼
 단편의 기억을 굳히려는 종지 종지들
 당신을 위해 이 집을 지었소
 말랑말랑한 검은 봉분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이미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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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음' 대신 '사랑'이라고 적어 볼까. 나는 "어차피 들어가 살지도 못할 집"인 줄 알면서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 지"어 주는 집, 그래서 "검게 바닥부터 타들어" 가는 그런 마음, 그런 사랑 말이다. "휘휘 마음대로 저을 수 없는 앙금들"이야 한가득이겠지만, 당신에게 "말랑말랑한" "단편의 기억"들이라도 건네주려면 이만 멈추어야 한다는 다짐은 그래, "검은 봉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묵묵히" 묵을 쑤는 그런 마음이 저기 있어 오늘도 이 지구의 "수천 개의 호수들"은 별빛들로 반짝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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