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에는 프랑스에서 마시는 와인이라고 해야 조악하고 겉보기에도 탁했으며 거칠었고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해 와인을 담그기 전에 모두 마셔야 했다. 즉, 와인의 수명을 1년으로 봤다는 의미다. 그래서 당시에는 더욱 투명하고 풍미가 섬세한 와인이 가장 귀한 와인으로 평가받았고 대부분의 와인은 다음 해 6월 이전에 모두 소모해야 된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다. 이때를 넘기면 와인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여름이 되면 와인의 질이 떨어지기도 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1500년대에는 오래된 보르도 와인이 담긴 오크통 하나가 6리브르밖에 안 됐지만 갓 담근 와인이 담긴 오크통 하나는 50리브르나 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대적인 와인 시대가 열린 것은 160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와인은 다른 작물과 구별되지 않는 농작물에 불과했다. 와인의 생산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와인 가격은 수확한 해가 지나고 햇와인이 나오면 폭락했다. 이렇게 대부분의 와인은 오래될수록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으나 특정 지역의 것은 3년, 5년, 10년을 둬도 맛이 유지되는 것이 있었으니, 오늘날 '그랑 크뤼(Grand Cru)'라 불리고 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 덕분에 단단한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가 등장하고 좋은 와인을 원하는 부유한 시민 계층이 출현, 귀족들이 소유한 보르도의 화려한 저택과 포도밭에서 질 좋은 와인이 생산되면서 품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근세에 들어 와인의 수요가 증가하고 거래가 활발해졌지만 품질이 불안정해 장기간 보관이나 운반이 어려워 테이블와인보다는 알코올(브랜디)을 섞은 '강화와인(Fortified wine)'이 더 인기가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와인의 발효원리와 오염의 원인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700년대 후반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화학의 아버지인 라부아지에(Lavoisierㆍ1743~1794)는 "와인이란 포도당이 알코올과 탄산가스로 변하는 화학반응의 결과"라고 밝히면서 와인의 과학적인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1860년대에 이르러서는 파스퇴르가 "미생물에 의해서 발효와 부패가 일어난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을 주장해 와인 제조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 그는 포도를 으깨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일어나는 것은 껍질에 있는 이스트(Yeast) 때문이며 이스트를 따로 분리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이스트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부산물로 글리세롤과 탄산가스가 나온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와 함께 산소의 영향력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학적인 발견으로 순수 이스트의 배양, 살균, 그리고 숙성에 이르는 제조 방법을 개선하게 됐고 산업혁명 이후 발달된 기계공업을 도입, 비교적 싼값으로 와인을 대량 생산해 일반 대중의 생활 깊숙이 침투하게 됐다. 그러나 유럽은 20세기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 이 같은 업적을 와인 양조에 적용할 겨를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쟁으로 파괴된 모든 것을 복구하면서 1950년대를 보내고 1960년대에 와서야 여유를 갖게 되면서 와인 양조에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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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1960년대부터는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들은 대학에 '와인양조학(Enology)'과를 신설해 전문 인력을 배출했다. 와인을 과학적으로 연구, 바로 현장에 적용시키면서 뛰어난 와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육 받은 신세대들은 지도를 펼쳐 놓고 지형과 기후를 따져 와이너리를 선정하고 풍토에 맞는 품종과 클론을 선택해 재배하면서 와인 양조보다는 포도가 좋아야 와인의 질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 덕분에 현재 우리가 마시는 와인은 유사 이래 가장 좋은 품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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