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6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번스타인 메모리얼 콘서트'가 열린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함께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꼽히는 레너드 번스타인을 조명하는 기념공연이다. 그는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번 공연은 1부 '번스타인이 사랑한 음악'과 2부 '미국이 사랑한 번스타인'이라는 주제로 나눠 진행된다고 한다. 특히 2부에서는 그의 대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사랑한'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삶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 이 마에스트로는 한때 미국서 정치적인 이유로 박해받아 지휘봉을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의 번스타인은 하버드대학과 커티스음악원에서 공부했다.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43년 거장 브루노 발터 대신 뉴욕 필을 지휘하면서부터다. 이후 뉴욕 필의 황금기를 이끌며 세계적 지휘자가 됐고 빈 필, 이스라엘 필 등과도 명연주를 들려줬다.
하지만 그는 좌파라는 정치적 성향 때문에 미 국무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는 1950~60년대 냉전시대와 당시 미국 사회에 몰아쳤던 매카시즘 광풍과 맞물려 있었다. 1951년 뉴욕 필 지휘자에서 물러났고 이 시기 미국에서 지휘대에 설 수도, 작품을 발표할 수도 없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감시도 받아야 했다. 여권 발급마저 금지됐다. 그럼에도 번스타인은 진보적인 정치인을 후원했고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지금부터 주가 2배 이상 뛴다" 데이터센터 지을때...
음악 활동을 재개한 후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일화 중 내한공연과 관련이 있는 것도 있다. 그는 1978년 뉴욕 필을 이끌고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 레퍼토리에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당시 소련 작곡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번스타인에게 이 곡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묵살하고 예정대로 연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국내서도 인기 있는 교향곡 중 하나가 됐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곡이 공식 연주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공산권 국가 작곡가의 작품이라고 연주를 금지하는 유신시대 한국의 모습에서 그는 과거 지휘봉을 놓아야 했던 매카시즘 시대의 광풍을 느꼈을 법하다. 이는 아직 그 시대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번스타인을 기념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