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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청국장, 스페인에 순댓국이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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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가 길어 올린 여행하며 먹는 법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이탈리아에도 콩을 발효시켜 만든 구릿한 냄새의 청국장이 있다. 파스타가 떠오르는 미식의 나라에 웬 쿰쿰한 청국장? 하물며 냄새만 맡아도 코를 싸쥐고 인상을 찌푸릴 것 같은 이탈리아 '패션 피플'들이 숟가락 가득 청국장을 입에 넣는 모습은 쉬 연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청국장의 이름은 '마코 디 파베'.

또 있다. 속이 허해서 걸진 국물 음식이 무척이나 당기는 날 밥 말아 우걱우걱 퍼먹던 순댓국. 고기는 접하지 못하고 남들 손사래 치는 내장 부위로나마 기름기를 보충하려 했던 우리네 민초들의 음식인줄 알았는데 스페인에도 있단다. 바로 '파바다'다. 얼핏 "피바다?"하기 쉬운 이 요리엔 실제 돼지 피, 선지도 들어간다고 한다.
스페인의 순댓국 '파바다'

스페인의 순댓국 '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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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음식이라고 여기고, 외국인들은 선뜻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마냥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이국적인 풍경 속에 비슷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음식을 둘러싼 문화와 역사와 환경은 다르되, 그것을 만들고 먹는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은 결국 비슷하기에. 기존의 통념을 깨는 이 소박한 깨달음은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누빈 경험의 결과다. 최근 출간된 장준우의 책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 얘기다.

저자는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경험과 유럽의 도시를 떠돌며 먹었던 미식의 기록이 이 책에 위에 켜켜이 쌓여있다. 하지만 남들 듣도 보도 못한 서양요리에 대해 이 만큼 알고 있노라고 잰 체 하지 않는다. 요사이 음식 전문가들의 흔한 글처럼 맛에 대해 가르치려 들면 독자와 동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저자는 영리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일까.

대신 여행의 기록을 눈 휘둥그레지는 사진들도 넌지시 전한다.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독자로 하여금 함께 여행을 다니는 느낌마저 갖게 한다. 분명 첫손에 꼽히는 이 책의 미덕이다. 제목에서도 카메라를 앞줄에 쓴 까닭은 이 사진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부엌칼을 허투루 든 것은 아니다. 요리를 배우고 또 직접 하는 과정에서 얻은 음식에 대한 통찰은 방랑기의 문장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는 기자 생활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 요리 유학을 선택했다고 썼지만 이 책은 유럽의 음식에 대한 취재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멀쩡한(?) 직장 그만두고 홀연히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가고 또 유럽의 60여 개 도시를 여행하며 남긴 것은 뭘까. 앞서 꺼낸 이탈리아의 청국장과 스페인의 순댓국 얘기로 돌아가 짐작해 볼 따름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청국장 '마코 디 파베'에 대해 "말린 파베(잠두콩)를 물에 넣어 뭉근하게 끓이는 요리인데, 파베를 말리는 과정에서 콩이 발효되며 청국장과 비슷한 향을 낸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 특유의 향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이나 찾는 전형적인 시골 음식이 된 것이 우리의 청국장과 비슷하다고 적었다.

음식을 둘러싼 문화는 달라도 그 맛이 내는 정서는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은 스페인 '파바다'의 경험에서도 이어진다. 파바다는 소시지 초리소와 돼지 피를 넣은 순대 모르시야, 염장한 삼겹살 토시노 등 세 가지 재료를 이르는 '콤팡고'가 들어간 국물 요리다. 그런데 이 파바다를 한 숟가락 먹으면 "머릿고기가 듬뿍 들어간 순대국밥과 다진 양념을 푼 돼지국밥, 그리고 녹진한 내장탕 사이 어딘가에 있는" 맛이 느껴진다는 게 이 책의 설명이다. 영혼까지 감싸주는 진한 국물이 주는 겨울의 맛은 부산의 돼지국밥이나 스페인의 파바다나 매한가지인 셈이다.

파바다

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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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저자는 음식을 대할 때 그저 이국적이라고 우러러보거나 촌스럽다고 낮춰 보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받아들이자고 한다. 유럽의 요리라고 주눅 들 필요도, 어려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식재료와 조리 방법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그 음식과 배경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어떤 요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북유럽의 연어 요리 '그라블락스'나 사슴 고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었던 경험을 관통하는 정신도 같다. "마음을 열면 몰랐던 신세계"가 펼쳐질지 모른다는 것.

그는 "음식을 만드는 최종 목표는 결국 먹는 사람의 만족과 행복을 향해 있어야 마땅하다"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어떤 음식이든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가 카메라와 부엌칼을 들고 써내려간 이 책의 최종 목표도 이와 같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읽고 책을 덮으면 훌륭한 식사가 주는 행복한 충만감이 남는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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