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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고치 요사코이축제와 日 지방문화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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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올해 연구년을 일본 고치시(高知市)에 있는 국립고치대학에서 보내게 된 인연 때문에 축제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내가 일본의 축제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이곳 고치에서는 매년 8월 9일부터 12일까지 요사코이 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에는 200여 개 팀 2만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관광객과 귀성객을 합하면 축제 참가 연인원이 100만 명을 상회하는데 고치 인구가 33만여 명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인원이다. 전야제 날, 눈앞에 펼쳐지는 너비 300곒짜리 불꽃의 장관에 경탄했다. 축제 내내 섭씨 40도를 넘는 더위 속에서도 히로메 전통시장 앞과 중앙공원에 마련된 무대에서, 오비야마치(帶屋町) 아케이드에서 흥겹게 춤을 관람했다.

축제가 끝난 뒤 일본 지방문화에서 받은 인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염천(炎天)의 극한 더위도 이겨내도록 한 것은 축제의 무엇 때문이었을까. 200여 참가팀은 30명 넘는 인원에서부터 100명 정도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했다. 한데, 팀 구성이 남녀노유(男女老幼)를 아우른 점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팀 선두에는 춤사위가 가장 뛰어난 이가 배치됐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만이 중심은 아니었다. 춤은 모두가 같은 동작으로 높은 완성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아이들조차 자기의 서툰 동작을 진지함으로 메우며 행진했다.
농사철 새 쫓는 도구인 나루코(鳴子)를 양손에 쥐고 '요사코이'를 제창하는 민요의 한 가락을 부르는 게 지역의 고유성을 담는 최소분모였지만, 여기에는 세대를 넘어 전통을 지킨다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춤의 최소분모에다 서양 록음악, 힙합, 브라질 삼바나 보사노바 같은 세계 민속춤이 화학적으로 결합된다. 화려한 복장과 반복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춤은 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호사였다. 중장년 팀원은 전통을 전수하고 유소년 팀원은 커서 전통 수호자가 될 것이었다. 관객들은 흥겨운 춤사위와 다양한 세대의 참여를 격려하며 한마음이 됐다. 축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역문화의 자긍심을 전파하는 계기였고 현재와 과거라는 시공간을 넘고 세대를 아우르며 공동체임을 절감하는 지방문화의 백미였다.

일본의 축제문화는 오래 전부터 우리 지자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지역축제나 관광상품 구성에 참조되고 있다 들었다. 하지만 일본의 축제는 '경제 활성화'라는 측면만 고려한 게 아니다. 축제는 빙산처럼 조밀한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한 지방 시민문화의 오래된 저력을 잠시 드러내보인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축제는 지방 분권의 오랜 역사와 지역적 특색을 근간으로 삼는다. 다른 축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전역에서 활동하는 요사코이춤 동호인들의 참여로 이뤄진다. 이들은 축제 참여를 자랑으로 여기고 이를 존중하는 문화적 통념과 일본 시민사회의 몸통이다. 수많은 동호회는 군무 동작을 익히며 8월 축제를 맞이한다. 이제 축제는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세계문화를 한데 버무려 발신하는 뛰어난 관광상품이 됐다.

축제를 기획한 시기는 1954년 미군정이 끝난 직후였다. 어려운 전후경제 시기 척박한 땅의 경제 활성화를 문화에서 찾은 것이다. 인근 도쿠시마현에서 400년이나 이어온 아와오도리 축제를 참조해 일본 전역으로 축제 열기를 확산시켜 오늘의 향연을 만들었다. 식민지와 압축적인 산업화를 거쳐온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버린 지역축제와 건강한 지방문화를 이곳 일본에서 절감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매우 섭섭한 일이다. 그러나 어쩌랴, 문화는 물처럼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 것을. 우리가 버린 것들을 되찾고 잊혀진 것을 다시 기억해내며 전통을 고양하는 이곳의 축제 광경은 우리의 지방문화가 보고 배워야 할 길 하나에 해당한다.
유임하 한국체대 교양과정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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