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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읽다]최소 30년 '한 우물 과학'에 노벨은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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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성과에 치중하는 한국과학에 던지는 메시지 많아

▲올해 노벨과학상은 '한 우물 과학'에 응답했다.

▲올해 노벨과학상은 '한 우물 과학'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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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등 이른바 2016년 노벨과학상은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뜻밖의 수상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노벨과학상을 받은 수상자들 조차도 발표당일 자신의 수상소식을 듣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수상 소식에 놀라움을 나타냈습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공업대 명예교수는 "노벨상 수상은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는데 연구 내내 남의 얘기로만 생각했다"며 "수상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덩컨 홀데인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수상 발표직후 연결된 전화에서 "매우 놀랍고 기쁘다"고 역시 놀라움을 전했습니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베르나르트 페링하 그로닝겐 대학 교수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며 "노벨상을 받게 돼 영광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30~50년 동안 한 우물만 판 연구자들이 수상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공통점은 우리나라 과학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습니다.

◆"이럴 수가…"=노벨상은 매년 10월 초에 발표합니다. 3일(이하 현지시간) 노벨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문학상의 순서로 발표됩니다. 이중 노벨과학상은 전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됩니다. 올해는 어떤 분야가 수상할 지, 수상자는 누구인지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노벨상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저녁 6시45분에 발표됩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발표되는 날이면 미래부 기자실에 비상 대기합니다. 각 분야의 국내 전문가들도 참석해 수상자가 결정되면 기자들에게 보충 설명을 합니다.
지난 4일 노벨물리학상이 발표되던 날 저녁에도 미래부 출입기자들은 기자실 브리핑 룸에 대기했습니다. 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서울대 교수) 등 전문가들도 도착했습니다. 이 단장이 전문가로 참석한 배경에는 올해 노벨물리학상이 '중력파'에 돌아갈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기 때문입니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 예측했고 올해 처음으로 관측해 100년 만에 증명된 큰 성과로 꼽힙니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해 줄 수 있는 혁명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날 6시45분 마침내 노벨물리학상이 발표되자 미래부 브리핑 룸은 일순간 "어? 이게 뭐지"라는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멘붕'에 빠졌습니다. 예상자 명단에도 없었던 수상자들의 사진이 프로젝트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위상수학'으로 올해 노벨물리학상을 설명하기 위해 노벨위원회는 '빵'까지 동원했습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는 중력파 연구자가 아닌 데이비드 사울레스 워싱턴 대학교수, 덩컨 홀데인 프린스턴대학 교수, 마이클 코스털리츠 브라운 대학 교수였습니다. 기자들은 물론 참석했던 전문가들도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인물과 '위상수학'이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보충 설명을 위해 참석했던 전문가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미지의 세계 보여줬다"=5일 발표됐던 노벨화학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계인 '분자 기계'를 만든 장피에르 소바주 스트라스부르대 명예교수 등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들은 분자 수준의 기계를 만들어 '미지의 세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올해 노벨과학상은 '위상수학' '분자 기계' 등 일반인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연구 주제가 수상대상이 됐습니다.

노벨물리학상은 위상수학으로 알려진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초전도체나 초유체(超流體)를 연구한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재료과학과 전자공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위상수학(토폴로지, topology)이란 물질의 상전이(相轉移) 때에 발생하는 변화를 연구하는 이론적 학문을 말합니다. 스웨덴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물리학상을 발표하면서 "이들은 '별난 물질'의 비밀을 벗겼다(They revealed the secrets of exotic matter)"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창을 열었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습니다.

'별난 물질'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연구는 일반인들의 관심과 동떨어진 '별난 곳'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사울레스 교수는 위상전이를 통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며 "사울레스는 그동안 노벨상 후보에 계속 거론되고 있던 인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노벨화학상은 초분자체(supermolecule)를 이용해 분자 기계를 구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밝혀낸 성과가 높게 평가받았습니다. 에너지 운동으로 직접 변환할 수 있는 '기계운동'의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정교하게 구현하고 제어하며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분자 시스템을 고안하고 제작한 것입니다.

노벨위원회는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분자기계라는 개념을 확장시켜 나노카를 디자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나노카(Nanocar)는 눈에는 보이지 않은데 바퀴가 있는 등 모양새가 자동차를 닮은 매우 작은 구조를 말한다. 나노(Nano)는 10억분의1m를 말합니다. 이를 응용하면 앞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초소형 로봇을 개발해 인체에 투입한 뒤 질병을 치료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계를 개발했다(They developed the world's smallest machines)"라고 수상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올해 노벨화학상은 분자 하나하나를 가지고 기계장치를 분자수준에서 만들어보겠다는 꿈같은 일을 실현시킨 것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며 "원자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집어다 이어붙일 수 있다는 개념으로 화학적으로 매우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벨생리의학상에는 오토파지(autophagy, 자식작용) 현상을 관찰한 성과를 꼽았습니다. 자식작용은 세포 내에 포식된 거대 분자를 분해하는 것 이외에도 노화와 암의 발병은 물론 심부전이나 당뇨병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찬기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는 "자식작용은 최근 암, 근육 기능 이상, 퇴행성 신경, 감염 질환과 노화 등 다양한 질병에 관여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앞으로 국내에서도 자식작용 이상이 불러오는 암을 비롯해 관련 질병에 대한 연구와 항암제 , 신경질환 치료약 개발 등 임상에 성공적으로 적용되면 환자들이 겪는 부작용과 이상 반응을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생리의학상 오스미 교수, 50년 동안 '오토파지' 연구

올해 노벨과학상은 예상 밖의 인물들이 수상했는데 공통점이 있다. 일반인들은 물론 기자와 전문가들조차 수상자들의 면면을 두고 '뜻밖의 인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이들 수상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상자들이 한곁 같이 '내가 노벨상을 받을 줄 몰랐다'고 밝힌 것이 첫 번째 공통점이다. 두 번째는 이들 수상자들의 경우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고 그 깊은 우물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사울리스, 덩칸 홀데인,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는 위상 변이에 대한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울리스와 코스털리츠 교수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다. 사울리스 교수는 1972년부터 'KT 상전이 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2차원 상에서 상전이를 설명했다. 홀데인 교수는 1983년 '스핀체인'(spin chain)을 규명해 1차원 상에서 상전이를 규명했다. 40년 가까이 한 분야를 연구한 전문가들이다.

노벨화학상도 마찬가지이다. 1983년 분자 기계에 대한 첫 번째 단계를 장 피에르 소바주 교수가 분자를 고리 형태로 결합했다. 이를 이어받은 이가 영국의 프레이저 스토더트 교수이다. 스토다트 교수는 1991년 막대기에 분자 고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어 페링하 교수가 '분자 모터'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1999년 같은 방향에서 계속 소용돌이치는 '분자 모터'를 개발해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했다. 특정 분야를 두고 한 연구자가 계단 하나를 만들면 다른 이가 이를 이어받아 한 계단을 올라가는 시스템임을 보여주고 있다.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는 세포가 손상됐을 때 불필요한 단백질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오토파지' 현상을 밝혔다. 그는 유학생시절부터 지금까지 약 50년 동안 '오토파지'라는 한 우물만 판 인물로 유명하다. 오스미 교수 부인은 남편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가정에서는)칠칠치 못한 양반이 노벨상을 탔다"며 "남편은 연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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