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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모래 속의 얼굴/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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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운대 백사장 여기저기에
 얼굴들이
 박혀 있다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다

 머리통만 내놓고 온몸이 모래로 묻힌 사람들……
 두어 삽 모래 끌어다 얼굴만 묻어 버리면
 주검―
 영락없이 주검이겠다

 검은 썬글라스를 끼고 모래 속에 누워
 고요히 명상에 잠긴

 (오, 주검의 저 평온한 얼굴들!)
 올 여름에도
 해운대 백사장엔 인산인해,

 벌거벗은 비키니 상주들과 문상객들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마신다 주검 곁에서
 무더기 무더기 평토제 지낸 음식과 술을 나누고 수박을 쪼갠다

 어이쿠 이놈의 염천지옥……
 잘못 걸어가다간
 덜커덩,
 주검의 얼굴을 밟겠다
 땅 밖으로 불거져 나온 주검의 얼굴을 밟고 기절초풍하겠다

 
[오후 한詩] 모래 속의 얼굴/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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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폭염에다 열대야다. 지옥이 따로 없다. 온통 수영장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피서를 가느라 전쟁이다. 팔월 들어 해운대엔 하루 백만여 명씩 모여든다고 한다. 말이 좋아 백만여 명이지 북새통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인파다. 뉴스 화면에 언뜻 비치는 모습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아이구 그래, 바닷물에다 몸 한번 담그자고 저 무슨 난리인가. 차라리 방에 콕 하는 게 백배 천배는 낫겠다 싶다. 시인도 그랬나 보다. 시인은 그런데 좀 악동 기질이 있나 보다. 모래찜질을 하는 사람을 두고 "영락없이 주검"이라니 말이다. 재미있는 시다. 재미있는 시를 읽는 동안은 잠시 더위를 깜빡 잊은 듯도 하다. 그래도 사실을 말하자면 해운대에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졌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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