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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뭣이 중한디 뭣이 중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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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철 금융부장

이의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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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이 중한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한지도 모름서..."

영화 '곡성'에서 귀신들린 딸 효진(김환희)은 아빠 중구(곽도원)에게 눈을 흘기면서 이런 대사를 던진다. 영화 곡성의 주제어가 '의심(疑心)'인지 '무지(無知)'인지 아니면 '미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대사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게다가 이 대사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공감까지 준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과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지 아느냐?"
섬마을 여교사가 학부형을 포함한 남자 셋에게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 사건에 대한 교육부의 첫 대책은 "앞으로 오지에 여교사를 파견하는 일을 자제 하겠다"였다.

이것은 참 그럴 듯한(?) 대책이었는데, 다만 한 가지 흠은 약간의 기시감(旣視感)을 주었다는 점이다. 약 3년 전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씨가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수행하면서 현지에서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을 때 청와대가 내놓은 대책, "앞으로는 여성 인턴의 선발을 가급적 자제하겠다"와 무척 유사했다.

청와대나 교육부는 나름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이니까. 그렇다면 섬마을 사건의 원인이 여교사고, 윤창중 사건의 원인이 여성 인턴이란 말인가? 여교사와 여성인턴은 피해자일 뿐인데...
구의역 지하철에 있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19살 짜리 비정규직 청년이 생을 마감했다. 서울메트로의 하청기업인 은성PSD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건이다. 사건 발생 이후 약 2주일간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간의 수상한 관계,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차별대우, 메트로를 퇴직한 임직원의 하청업체 재취업 등 온갖 이슈가 공개되고 비판받고 급기야 서울 시장까지 나서서 사과했다. 그래서 나온 서울시의 대책은 "하청업체인 은성PSD를 직영화해 비정규직을 없애고, 메트로직원의 하청업체 재취업도 금지시키겠다" 였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으니 비정규직을 없애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발상이다. 아니 이렇게 쉬운 방법이?

학생들을 보호하라고 만들어놓은 학교 경찰이 여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정부는 이번엔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교 경찰을 없애는 것인데... 학교 경찰 제도는 2011년 11월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투신자살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경찰청은 사건 발생 두달 만에 현직 경찰 195명을 학교 경찰로 배치하는 신속함을 보여주었고, 5년이 지난 지금 학교 경찰은 1075명까지 늘었다.

우리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습관적으로 정부에 '대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한다. 그것도 당장 내놓으라고 한다.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도 여기에 불을 지핀다. 한발 앞서서 조급증을 보이고, 대책을 뚝딱 내놓지 못하면 무능한 관료, 세금만 축내는 공무원으로 매도한다. 선명성 경쟁이 마치 정의의 구현인 양 행동한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구의역 사고 때도 그랬고, 섬마을 성폭행 사건 때도 그랬고,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때도 그랬다.

경제 이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대한 대비책도 그렇고, 금융시장 안정책도 그러하며, 구조조정중인 조선ㆍ해운업의 10년 비전도 그렇다.

일단 상황을 모면하고 보자는 공무원이나, 책임질 것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관료를 비호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무조건 대책과 재발방지책을 요구하는 우리의 조급증은 과연 '무죄(無罪)'일까.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무지(無知)'는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단세포적인 대책을 내는 정부의 모습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대책에 목을 매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면서 곡성의 효진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말 뭣이 중한디?"






이의철 금융부장charl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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