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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이락과 필연 사이..공정위, 오라클에도 '무혐의'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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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팔기 등 포착하고 야심차게 조사했으나 결국 용두사미
웬만하면 솜방망이 처분에 '새가슴' 비난.."대법원 판결 탓"
공정위 관계자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 분위기 쇄신해야"


오라클 기업아이덴티티(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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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사진 출처 : 공정위 홈페이지)

정재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사진 출처 : 공정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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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오비이락(烏飛梨落·실제로는 관계가 없는데 시기와 장소가 겹쳐 괜한 오해를 사는 경우를 일컫는 사자성어)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계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 오라클의 끼워팔기 등 혐의에도 앞선 주요 불공정 행위 사건에 대해서처럼 면죄부를 줬다. '무뎌질 대로 무뎌진 제재의 칼날이 이번에도 맥을 못 춘 게 아니냐'는 지적에 공정위 관계자는 '오비이락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13일 공정위가 한국오라클의 제품 끼워팔기와 구입 강제 의혹을 무혐의로 일축하자 최근 발표된 일련의 처분과 맞물려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오라클 미국 본사의 100% 자회사다. 이 회사 주력 상품인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은 한국 시장 점유율이 60%에 이른다. DBMS란 컴퓨터 내 정보를 저장·검색·가공할 수 있도록 설계된 기업용 정보 관리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국내 주요 기업, 은행·증권사는 물론 행정자치부 통합전산센터도 오라클 DBMS를 사용하고 있다.
당초 공정위는 한국오라클의 압도적인 점유율 이면엔 '꼼수'가 있었다고 봤다. 지난 4~5년간 DBMS에 대한 버그나 장애를 관리해 주는 유지·보수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DBMS의 차기 버전을 끼워팔기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오라클이 고객들에 'DBMS를 비롯한 각각의 제품을 구입할 때 무조건 유지·보수 서비스도 함께 사야 한다'고 못박은 점도 문제시됐다.

◆질질 끌다 결국 '무혐의' 발표=거창한 혐의를 담은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전원회의 무혐의 처분으로 휴지조각이 됐다. 공정위가 야심차게 관련 조사 사실을 전한 뒤 1년 가까이 끌며 기대감만 높여온 터라 이번 무혐의 결정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해당 결정은 지난 6일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나왔다. 이어 공정위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13일 "오라클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외부에 알렸다.

무혐의 결정이 선거 이슈에 묻히는 문제와는 별도로 공정위가 밝힌 '처분 사유'는 "오라클코리아엔 어떤 잘못도 없다"는 내용에 가까웠다.

우선 제품 끼워팔기 혐의에 대해 공정위는 "끼워팔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OS) 윈도우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 같이 주된 상품(tying product)과 종된 상품(tied product)이 별개의 시장으로 구분돼야 한다"며 "오라클의 유지·보수 서비스와 DBMS 차기 버전은 관련 시스템 시장의 구성 요소일 뿐 별개의 독립된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입 강제 혐의에 관해선 "유지·보수 서비스가 쉽게 복제될 수 있는 데다, 이를 막을 별다른 기술적 대안도 없다"면서 "모든 오라클 소프트웨어 라이선스에 대해 같은 오라클 유지·보수 서비스만 구매해 쓰도록 의무화한 것은 지식재산권 침해와 무단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라며 한국오라클의 손을 제대로 들어줬다.

◆"그 넘치던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나"=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해 4월28일 돌연 기자들을 불러모아 "공정위 내에 신설된 정보통신기술(ICT) 전담팀이 첫 번째 과제로 한국오라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제품 끼워팔기로 경쟁을 제한한 혐의 등을 포착해 조사했고, 현재 심사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당시 공정위는 2~3달 이내에 제재를 가할 것처럼 열을 올렸으나, 이후 11개월 넘게 감감무소식이었다. 최종 결론이 늦어지는 사이 '공정위의 제재가 임박했다' '제재하면 다른 나라 경쟁 당국도 오라클 조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등 각종 추측만 난무했다. 지난 1월25일 스테펀 셀리그 미국 상무부 차관이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을 비공식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뒤에는 '미국 정부가 공정위의 오라클·퀄컴 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와 관련, 유선주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기술적으로 복잡한 사건이고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특성이 있어 이해와 분석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며 "2차례의 심의에서는 공정위 심사관과 피심인(한국오라클) 측이 첨예한 공방을 펼쳤다"고 말했다.

조사 초반 공정위가 나타냈던 자신감과 심의 과정에서의 첨예한 법리 다툼은 결국 무혐의로 귀결됐다. 무혐의 사유는 지난했던 과정이 무안할 정도로 한국오라클 입장을 대변했다. 제기된 의혹들이 찜찜하게 남은 이유다.

◆웬만하면 솜방망이..기업친화적 공정위?=만약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한국오라클 제재가 결정됐다면, 관련 매출액 등을 감안할 때 과징금이 600억원 이상이었을 것으로 시장은 추산하고 있다. 한국오라클은 2014년 한 해 동안만 매출 8174억원을 올렸고, 이 중 DBMS로 거둔 매출액이 4886억원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공정위가 면죄부를 쥐여줌에 따라 한국오라클은 과징금 폭탄을 피하고 끼워팔기 등 판매 노하우도 지키게 됐다. 공정위 결정이 일종의 판례로 작용해 타국의 오라클 제재 논의도 위축될 공산이 크다. 오라클은 글로벌 DBMS 시장의 4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IT공룡 오라클과의 법정 공방에 지레 겁을 먹고 무혐의 처분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지난해 공정위 조사 사실이 공개됐을 때 이미 '제재가 결정될 경우 한국오라클이 국내 대형 로펌을 등에 업고 공정위와 소송전을 펼치는 등 전방위로 대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공정위는 근래 수천억원대 과징금 판결에서 줄줄이 패소한 탓에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주유소 원적지 담합과 같은 해 12월 발생한 라면 가격 담합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공정위 주장과는 달리 '과점 사업자 간' 담합이라고 볼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며 두 사건에 대해 원고(기업) 승소 판결했다. 이 두 사건에서 공정위가 토해낸 과징금 규모만 약 4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들어서도 대법원은 '일감 몰아주기'를 이유로 공정위가 SK그룹에 부과한 350억원대 과징금 처분에 대해 지난 달 10일 전격 무효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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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케이티(KT)의 계열사 부당 지원 사건과 스크린골프 1위 업체인 골프존의 가격 담합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정 ▲올해 1월 커피 브랜드 이디야의 가맹사업법 위반을 무혐의로 결정 ▲지난 달 에스케이텔레콤(SKT), KT, 엘지유플러스(LGU+) 등 이동통신 3사와 함께 잠정 동의의결안 발표(동의의결 : 불공정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는 기업이 스스로 소비자 피해구제 방안을 마련하고,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 위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설 명절용 선물세트 값 담함 의혹을 사실상 무혐의로 일축 ▲오라클 무혐의 등 솜방망이 처분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이쯤 되면 오비이락이 아닌 필연(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일)이라고 할 정도다.

공정위는 "대법원이 더욱 정교하고 과학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이 생겨 1심 기능을 하는 공정위 입장에서도 기업 제재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지만, '기업 도와주기' '새가슴' 처분이라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공정위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오라클 건의 경우 특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무혐의 결론이 나지 않았을 여지가 충분했던 사건"이라며 "앞으로 ICT 전담팀을 태스크포스(TF)에서 과(課) 단위로 격상시켜 보다 체계적으로 관련 사건에 대응하는 등 분위기 쇄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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