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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문화프리즘] 에셴바흐와 모차르트, 그리고 소설가 한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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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신혼부부가 우리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다. 새댁이 가끔 피아노를 쳤다. 어느 날 슬쩍 들여다보니 마루로 통하는 문 앞에 업라이트피아노가 서 있었다. 내 아버지는 말씀이 적고 소음을 싫어하셨다. 그러나 새댁이 피아노를 치면 읽던 책을 덮고 귀를 기울이셨다.

대학생이 되어 문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을 때, 음악이 책갈피로 스며들었다. 시간이 나면 학교 후문 앞에 있던 '시공', 종각 뒤에 있던 '에로이카'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이때 어린 날 새댁이 연주한 음악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11번 A장조, 쾨헬번호 331.
나는 모교의 전통을 훈습하여 시를 쓰고 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때는 소설가가 될 꿈을 품었다. 당시 스타 소설가 중에 한수산 씨도 있었다. 그가 쓴 '부초'는 베스트셀러다. 나는 그의 문장과 그가 쓴 소설의 정서가 좋았다. 한 씨는 1981년에 터진 필화사건으로 문단 밖의 역사에도 이름을 남겼다.

'한수산 필화 사건'은 한수산이 어느 일간신문에 연재한 소설 '욕망의 거리'와 관련이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군인이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에 대한 묘사가 군부 정권의 비위를 거슬렀다. 작가와 신문사 관계자, 문단 동료들이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충격을 받은 한수산 씨는 글쓰기를 중단하고 일본으로 떠나 여러 해 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나는 한 씨가 쓴 수필을 통하여 어린 날의 피아노 선율과 모차르트를,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를 만났다. 한 씨는 고초를 치르고 나와 제주도에 가는데, 거기서 에셴바흐의 연주를 들었다고 했다.
"에셴바흐가 들려주던 모차르트의 소나타 k 331. 그 1악장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나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것은 나에게 어떤 음악이었던가.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 그 찬가였다."

한수산 씨가 들은 음악은 에셴바흐가 1967년 5월 베를린의 예수 그리스도 성당에서 녹음한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에 실려 있다. 한 씨는 이후 유럽과 일본을 전전하며 이 음반을 찾아 헤매지만 손에 넣지 못한다. 그러다가 지인의 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감격한다.

"그 LP, 나를 부축하여 다시 이 '살아가는 일의 아름다움'을 향해 걸어가게 만들었던 그 LP…."

이 음반은 나에게도 있다. 에셴바흐는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다. 팬이 되어 그에 대해 읽은 다음, 한수산의 다친 영혼이 그에게 또는 그의 음악에 가 닿을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짐작했다.

에셴바흐는 고아였다. 어머니는 그를 낳다 죽었고 나치에 반대한 아버지는 전사했다. 아이는 실어증에 걸렸다. 그의 인생은 어머니의 사촌에게 입양돼 피아노를 배우면서 달라졌다. 양어머니는 "피아노를 쳐 볼래"라고 물었고 에셴바흐는 "예"라고 대답했다. 입이 열린 것이다. 그는 건반 앞에 앉았다.

에셴바흐는 피아니스트로 성공했지만 지휘하기를 원했다. 그는 "열한 살 때 위대한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음악을 듣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조지 셀과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그의 멘토라고 한다. 그가 지휘자로 데뷔한 해는 1972년. 함부르크에서 안톤 부르크너의 3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나는 에셴바흐가 지휘한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 그러나 연주회가 열리는 9일에 나는 스승의 생신을 맞아 인사를 올리기로 했다.

지휘자 에셴바흐의 음악을 듣기 위해 반 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는 오는 7월 8일 서울시향과 구스타브 말러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그 기회는 놓치지 않을 작정이다.

문화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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