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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가장 야한 러브스캔들 쌍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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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고려가요'와 민중의 속내 읽기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신라 처용이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불러제친 불륜의 노래는 고대의 권력과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기초 사회질서가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던 시절의 목가였다. 왕이 몽고의 부마가 되어 무릎을 꿇던 13세기 고려국에는 처음엔 타의에 의해 풀어헤쳐진 슬픈 치마가, 차츰 자발적인 욕망에 의해 펄럭이는 상열(相悅)의 꽃이 되어 피어난다.

자존심 강한 왕조의 엄격주의와 불교의 염결이 끈을 조였던 옥빛 영혼의 나라는, 그 끈을 놓침과 동시에 성적인 아노미현상을 겪는다. 쌍화점은 그런 시절에 각 계층에서 죽순처럼 돋아나온 '유비쿼터스 처용가'이다.
처용가와 쌍화점은 외래인과 외래문화의 충격이 성 관념을 뒤흔든다는 측면에서 한 줄기에 꿰어진다. 처용가에는 눈물도 분노도 없고 오히려 뒤엉킨 판을 차라리 즐기자는 염세적 낙관의 난무가 숨어있고 쌍화점에는 뒤엉킨 판을 즐긴 다음에 뒤탈을 막기 위해 입막음을 하는 자들과 소문을 따라 그 판에 다시 유입되는 자들을 조롱하며 즐기는 패러독스가 드러나 있다.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는데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쌍화점의 쌍화는 만두를 말한다. 속을 채운 만두를 오므린 부분이 꽃같다 하여 쌍화(雙花)이다. 꽃의 성기와 만두의 모양과 인간의 성적인 기호를 겹쳐놓은 은유이다. 만두는 몽고의 음식이며, 회회아비는 아랍인이다. 처용이 아랍인이라는 의견들과 쌍화점의 회회아비는 묘하게 같은 코드에 얹혀있다. 쌍화를 사러가는 여인 또한 낯선 남자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고려와는 다른 문화체계를 선망하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만두가게 종업원과의 연애는 당시에는 '촌스럽지 않은 삶'의 기호였을 수 있다. 손을 쥐지 않고 손목을 쥐었다. 몸의 밀착과 다급하게 진행된 상황이 '손목'에서 느껴진다. 거기엔 남자의 욕망이 표현되어 있는데, 여자의 동의는 행간에 감춰진다. 반항이나 놀람이 있었다면 그 뒤에 표현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쥐더이다'라며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있다. 여기엔 손목을 쥔 자에 대한 기소나 분개가 전혀 없고, 오히려 그에게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이 느껴질 정도이다. '손목을 쥐더이다'는 육체관계를 은근하게 표시한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만두처럼 서로 속살을 비비는 두 송이 꽃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말씀이 이 점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지금 여기서 벌어진 일에 관한 소문이 이 가게 밖에 나가고 또 들어오면, 정사를 목격한 어린 떠돌이 네가 한 말이니 추궁하겠다. 이 가요는 원래의 시가 따로있었거나 연주를 위해 제작된 가사이다. 따라서 공연의 오디언스를 의식하여 화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처음엔 여인이 직접 청중을 향해 고백을 한다. 그러다가 만두집 가게에서 일하는 어릿광대를 향해 입막음 말을 한다. 외간남자와 정사를 벌인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는 게 아니라, 다만 그것이 물의를 일으켜 자신의 사회생활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 이 노래가 품는 풍자이다. 새끼광대를 향해 여인이 협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을 것이다. 또 '손목을 쥐더이다'와 '이 말씀이' 사이에 있는 '숨겨진 사건'을 짐작하며 슬그머니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로러거디러'를 비롯한 차음은 현악기 소리를 흉내낸 것이다. '더러듕성'은 크게 호언하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이지만 '다리러더러'류는 자잘자잘하게 내는 소리로 궁리와 뒤통수 치기와 속삭이기의 태도를 느끼게 한다. 점잖은 태도 아래에 들끓는 욕망과 교묘한 세상살이를 그런 소리로 표현해낸 것이 아니랴.

그 자리에 나도 자러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럽고 거친 곳 없다

그런데 소문이 다 나버렸다. '다리러더러'가 그걸 암시한다. '더러둥셩' 협박을 했지만, 이 새끼동자 역시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종알종알 다 풀고 다닌다.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다. '봤지롱' 통신이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이 여인에게 손가락질을 해야할 판인데, 반응이 전혀 다르다. 이게 또 웃음을 자아내는 풍자이다. "어디야? 그 회회아비 가게 주소 좀 알려줘. 나도 한번 유혹받아 볼래." 입소문이 나면서 여인네들이 치마끈 잡고 달려간다. 순결이 무너지면서 순결이 무너진 사람들은 순결이 무너진 세상을 욕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한다. 아라비안 나이트가 그러했고 유럽의 '데카메론'도 그러했다. 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막가파 여인들의 행태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낄낄거렸을 것이다. 이성의 통증같은 건 사라진지 오래다.

'위 위'라는 악기 소리는 아마도 사람들이 몰려가는 바람소리를 흉내낸 게 아닐까 한다. 바람났다는 말이 저 '위 위' 두 차음에서 실감나게 느껴진다. 그리고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모양새가 이번엔 '다로러거디러'다. 그런데 회회아비 코스를 체험한 여인들의 쑥덕이는 말이 걸작이다. '아이고, 더러워라. 그놈의 침대가 싸구려 여인숙보다 못해. 자칫하면 침대 내려앉게 생겼더라." 이런 말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워낙 많은 여자들이 이미 다녀갔기에, 온통 그 집에 밤꽃 냄새가 둥천을 하고 이불에는 뭇여자 지분내가 들끓고 있더란 얘기다. 옆에 있는 여인보고, 그러니 너는 가지말라고 말한다. 왜 가지 말라고 그러느냐? 이 보물을 나만 즐기겠다는 얘기이다.

한편 그것보다는, 이 남자가 어마어마하게 더티하고 거칠게 해서 죽다가 살아났다는 엄살일 수도 있다. 이건 뭐냐 하면, 최고의 파트너를 경험했다는 자랑을 하는 것이다. 반어법으로 '처용 마누라 이래로 최고의 대공사'를 벌였다는, 여인들의 자랑이, 고려 쌍화점의 풍자를 이루는 고압선이다. 과연 충렬왕을 비롯한 고려왕들은 당대의 포르노인 쌍화점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을까. 분노를 느꼈다면 열광적인 수용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외세의 겁탈에 의해 생겨난 이 분방한 풍조에서 자유로운 일탈의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절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울 수록 섹스로 몰려드는 부나비같은 광기들은 커진다는 것을 쌍화점은 리얼플레이로 보여준다.

삼장사에 불공 하러 갔는데
그 절 지주가 내 손목을 쥐여이다
이 말씀이 이 절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럽고 거친 곳 없다

이번엔 절집을 풍자로 삼는다. 쌍화점이 경제 속의 문란을 문제 삼는 것이라면 삼장사는 종교의 비리를 들추는 것이리라.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박살내듯, 쌍화점을 부르는 여인은 삼장사 지주를 발가벗긴다. 그런데 묘하게 결론은 '천하에 더러운 곳이더라'는 얘기와 '끝내주는 곳이더라'는 얘기가 중첩되어 웃음을 생산한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는데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여이다
이 말씀이 이 우물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럽고 거친 곳 없다

이번엔 정치와 왕을 풍자로 삼는데, 여기엔 좀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왕이 공연의 수용자이기도 하고, 또 공연히 역린(逆鱗)을 하다가는 철퇴가 내려올 터이니, 그 수위를 조절하여 왕을 웃게 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상징을 많이 넣어 애매하게 처리한다. 왕이 기분 나쁘지 않게, 그러나 왕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해야, 이 시대엔 실감나는 풍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레 우물은 둥글게 생긴 궁을 암시한다. 물을 길러갔다는 것은 궁 안에 볼 일이 있어 들어갔는데, 마침 지나가던 왕이 보더니 손목을 잡는 게 아닌가. 그런데 궁 안에서 이것을 소문낼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두레박'에게서 애교삼아 다짐을 받아내는 것이다. 왕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면 괘씸할 수도 있겠으나, 회회아비와 삼장사 중이 매를 먼저 맞았으므로, '그 잔 데 같이 더럽고 거친 곳 없다'는 무서운 말도, 거기에 섞이어 용서가 되는 것이다.

술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는데
그 지아비 내 손목을 쥐여이다
이 말씀이 이 집 밖에 나고들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술바가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더러 다리러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자리에 나도 자러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더럽고 거친 곳 없다

사실은 3연(왕에 대한 풍자)의 자극적인 요소를 분산하기 위해 네 연을 갖췄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 종교, 정치를 건드렸으니 이제 '사회'면으로 넘어갈 차례다. 술집에 갔는데 술파는 아저씨가 유혹을 해서 일을 벌였다. 어찌보면, 회회아비나, 스님이나, 왕에 비해서, 가장 뉴스가치가 떨어지는 노래이다. 이 연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더라는 함의를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물타기' 연이다. 가게와 절에는 새끼광대와 새끼상좌가 있었는데, 궁궐에 두레박을 넣다보니 술집에는 술바가지를 넣어, 앞연과 센스를 맞췄다.

사랑이 지금처럼 정신적인 무엇이 강조된 개념이었던 건, 얼마되지 않았다. 신라와 고려와 조선의 사랑은 모두 육체였다. 남녀가 눈이 맞으면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틈도 없이 잠자리를 펼쳤다. 몸이 움직이는 곳에 사랑이 있었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육체적 그리움이 다시 사랑이었다. 사랑한다고 썰을 풀 동안에 옷고름을 푸는 사랑. 사랑하는 것은 손목을 잡는 것이고, 손목을 잡는 것은 당신과 나의 손금을 맞춰보며 운명인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속궁합 확인에 들어가는 긴박한 돌격의 서곡이었다.

신라의 사랑은 처용가에서 치명적으로 무르익었고, 고려의 사랑은 쌍화점에서 뼈와 살이 타들어갔다. 조선은 처용가와 쌍화점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가리고 욕하고 바꿨지만, 틈날 때마다 욕정과 불륜의 이 노래들은 튀어나왔다. 처용가를 유교의 관습 속에 끌어들이고 쌍화점을 통제가능한 욕망으로 조절해나간 것이, 조선의 관기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땅의 사람들은, 스스로 함부로 뜨거워지진 않는 음전한 겨레였으나, 한번 불이 붙으면 앞뒤 안가리고 욕정의 담장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대책없이 겁나는 사람들이었음을, 우린 쌍화점에서 다시 읽는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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