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 대기업에 다니는 박동훈 부장(가명·44)는 이번주 휴가 중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연차휴가를 소진하라는 지시가 나와 연차휴가서는 냈지만 회사 사정과 상사 눈치 때문에 억지출근을 했다. 박 부장은 "예년 같으면 연말연시에 2주간 휴가를 가곤 했는데, 올해는 휴가서만 제출해 놓고 출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이 상당수"라며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라 대놓고 불만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한 조선업체는 올 연말 송년회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최악의 경영난에 빠지면서 연말 모임은 언감생심이다. 이지수 과장(가명·38)은 "예전 같으면 연말 분위기에 들떠 일도 손에 안 잡혔는데 지금은 송년회에 '송'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라며 "직장 동료가 하나둘 떠나고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마당에 누가 그런 마음이 생기겠냐"고 전했다.

대기업들이 우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업황부진과 실적악화, 구조조정 바람이 몰아치면서 떠들썩한 연말분위기가 자취를 감췄다. 부서별 소규모 모임도 봉사활동으로 대체하거나 가볍게 먹고 헤어지는 등 간소화됐다.


조선,철강 등 중후장대업종은 체감한파가 가장 크다. 구조조정이 진행중인 한 조선사는 연말 모임을 포함한 불필요한 사내외 행사와 각종 연수 프로그램을 흑자 달성 전까지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다른 조선사들 또한 매해 진행하던 임원 연말 송년회, 퇴직자 대상 송년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부서별 모임도 최대한 간소화하자는 분위기다. 조선사 관계자는 "감원 칼바람으로 다들 본인 자리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 감히 누가 송년회를 하자고 말을 꺼내겠냐"며 "그런 저녁 자리를 한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조선사 관계자 역시 "다들 쉬쉬하고는 있지만 사내 분위기가 정말 좋지 않다"며 "묵묵히 자기 일만 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연말임에도 직원들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 있다. 올해 판매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연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조가 최근 부분파업을 강행하는 등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의 연내 타결도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직원들의 마음이 더욱 무거운 상황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조용히 연말을 보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성과급에 대한 기대와 송년회로 회사 분위기가 들떴겠지만 다들 힘든 상황에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AD

실적 둔화로 허리띠를 졸라 맨 전자업계에는 올 연말 대규모 감원바람이 불었다. 하루 아침에 계열사마다 퇴직자가 속출하자 우울한 분위기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구내식당은 디자인 팀이 대규모로 빠져나가고, 인사이동이 시작되면서 썰렁한 느낌마져 들기도 했다. 그러나 12월도 중반을 넘어선 만큼, 퇴직자들의 송별회는 대부분 마무리됐다. 남은 이들은 또다시 몸을 추스르고 내년을 준비 중이다. 남은 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올해 연말 성과급이다. 이미 삼성 임직원 사이에는 '2015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무선사업무, 반도체부문, 생활가전부문 등등 세부적인 사업부별로 숫자가 적힌 찌라시형 성과급 예상치가 나돌았다.


LG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실적이 부진했던 LG전자도 12월이 되자 뒤숭숭한 분위기었지만, 인사도 대부분 마무리 된 만큼 이제는 내년을 준비 중이다. 특히 LG전자는 그룹 전체적으로 밀고 있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ㆍ올레드) TV에 벌써부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LG전자는 내년 2월7일(현지 시각) 열리는 2016년 수퍼볼의 광고전에 처음으로 참가한다. LG전자는 올레드 TV 광고를 내보내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겠다는 계획이다. 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전전시회 'CES 2016' 준비도 한창이다. 삼성, LG 등은 CES에서 신제품과 한 해 전략을 발표한다. 떠날 사람들은 떠났고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남은 이들은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