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처음부터 투자자의 길을 걸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의 꿈은 피아니스트였고 대학에서는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헝가리의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18살에 고향 부다페스트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유학했다. 파리에서 증권 투자를 배웠고 이후 1999년 숨을 거두기까지 장장 70여년 동안 유럽 전역을 누비며 투자자로 살았다. 전 세계 10개 도시에 집을 가졌고, 헝가리어ㆍ프랑스어ㆍ영어ㆍ독일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했다.

짧게나마 주식중개인으로도 일했다. 그는 주식중개인의 역할을 단골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는 법에 비유하며 '주인이 나에게 오늘의 요리를 추천하면 나는 절대 그 음식을 주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방에 아직 남아있는 5인분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한 작전이기 때문'라고 깎아내렸다.


20세기 유럽 전역의 증권시장에서 활동하며 두 세대에 걸쳐 독일 증시에서 우상으로 군림한 그에게 투자 철학의 밑바탕이 된 건 처음 주식시장에 갔을 때 어느 노신사로부터 들은 격언이었다. '주식시장에 주식보다 바보들(증권시장 참여자들)이 많은가, 아니면 바보들보다 주식이 많은가'.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다.

그는 투기를 즐기는 자본주의와 주식시장의 예찬론자다. 고객에게 탈세를 컨설팅하려 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국채 시세 교란으로 조사를 받고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경험도 했다. 실상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스위스의 한 주간지가 그가 쓴 글에 대해 '한 고등 사기꾼의 고백'이라 비평했을 때, 그는 오히려 '사람들은 금융전문가의 메마른 논문보다는 사기꾼의 고백을 훨씬 더 기꺼이 읽을 것'이라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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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35세에 자본수입만으로 잔고가 넘쳐 일찌감치 은퇴를 결정했다가 우울증을 얻는 그는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인생 2막을 열었다. 서문을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 그의 유작이나 다름없는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를 비롯 13권의 책을 펴내 전 세계적으로 300만부 이상 팔렸다.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는 출간 즉시 독일 베스트셀러 1위,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는 주식시장을 '정글'이라 불렀다. 즉각적인 현상이나 사건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 '대중심리'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절대로 정확한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주식을 두고 투자자들의 추정과 평가가 끌고가는 게임이라는 것. 자기 자신은 그의 한 저서에서 "재무장관, 나는 될 수 없다. 은행원, 나는 되고 싶지 않다. 투자자와 주식거래인, 이것이 바로 나다"라고 고백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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