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 암살범을 쫓던 추적자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영화 암살에서 안옥윤(전지현)의 마지막 대사다. 영화에서는 정의가 실현되는 데 16년이 걸렸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죗값을 받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안두희는 19년 전인 1996년 10월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다. 1949년 김구 선생이 거처이던 경교장 2층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권총에 맞아 숨진 지 47년이 지난 뒤였다.
안두희는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김구 선생을 백주에 살해하고 현장에서 붙잡혔지만 1년 7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났다. 석방 뒤에는 진급해 군에 복귀했고 제대한 다음에는 군납 사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 암살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라는 책에서 "암살 배후는 김창룡과 신성모를 비롯한 군부세력, 해방 후 친일파 척결을 주장해온 김구에게 위협을 느낀 친일세력, 그리고 단독정부 추진세력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중략) 당시의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이승만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승인' 또는 '암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썼다.
김구 선생 암살 배후를 조사하고 권력의 비호를 받던 안두희를 추적하는 것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4ㆍ19혁명 이후에 비소로 시작됐다. 2013년 출판된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라는 책에는 안두희를 추적온 4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4명은 안두희를 죽인 박 씨를 비롯해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등이다.
우선 광복군 출신으로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던 김용희는 1961년 치열한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1965년에는 김제 출신 청년 곽태영이 안두희를 찾아내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다. 또 권중희 민족정기구현회장은 10년 넘는 추적 끝에 1987년 서울 마포구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안두희를 찾아내 구타했다. 권씨는 1990년 안두희가 미 정보기관 전략사무국(OSS)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1992년에는 안두희를 가평의 농장으로 끌고 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치하를 받았다'는 내용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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