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지수-체감물가 괴리, 누구의 잘못인가?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주부 A씨는 3개월 전 대형마트에서 양파 1망 가격을 보고 놀랐다. 얼마 전만 해도 2500원이었던 것이 4000원이 넘는 가격표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생활물가는 두 배 가까이 가격이 올랐는데, 정부에서는 소비자물가가 고작 1%도 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A씨의 체감물가는 마트에서 가장 많이 오른 양파, 그것도 3개월 전의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때문에 정부가 발표하는 0%대의 소비자물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 같은 착시현상은 왜 발생하는 걸까.
◆물가지수는 전체의 평균값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9월까지 10개월 연속으로 0%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담뱃값 인상을 고려하면 상승률이 마이너스인 달도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 입에서 "물가가 안올라서 살만하다"는 말은 듣기 힘들다.
우선, 소비자물가가 대표적인 제품들의 상승률을 종합적으로 집계하는 데 원인이 있다. 소비자물가는 국제노동기구(ILO) 국제기준에 따라 작성된다. 대상품목은 481개 품목인데, 개별가구는 이들 품목을 모두 소비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가하락으로 휘발유·경유 값이 리터당 2000원에서 1400원대로 떨어졌지만 차가 없는 가구에서는 이 같은 혜택을 체감하지 못한다. 주거난방의 경우에도 소비자물가는 평균가구가 도시가스, 지역난방, 등유 등을 모두 소비하는 것으로 가정해 측정하는 방식이지만, 개별가구는 이 가운데 한 품목만 소비한다.
지역별 차이도 있다. 소비자물가는 37개 도시의 평균물가를 반영하지만, 체감물가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지난달 지역별 물가를 보면 서울은 1.3% 오른데 반해 충북은 0.4% 내렸다. 이들을 모두 종합해 0.6% 오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의 체감물가와 소비자물가 간에 0.7%포인트 만큼의 격차를 느끼게 된다.
소비자물가가 평균가구의 소비구조에 따라 품목별 가중치를 산정하는데, 개별가구의 품목별 소비규모는 이와 차이가 있다.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구에서는 사교육비가 다른 가구에 비해 훨씬 많이 들어가고, 할아버지·할머니만 사는 가구에서는 의료비 비중이 크다.
가격변동 비교시점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물가는 1년전 가격과 비교를 하지만 체감물가는 물건값이 가장 싼 시기나 최근 구입시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휘발유값이 1년전에 비해 20% 하락했지만, 1주일 전 구입했을 때보다 1% 상승한 것이 체감물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가 품질 변화를 반영해 측정하지만, 체감물가는 가격자체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품질이 좋아지면 소비자물가 하락요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초코파이 가격이 유지된 채 크기가 커진 경우 소비자물가는 하락한 것으로 반영되며, 반대로 과자 중량이 감소할 때에는 소비자물가는 상승한 것으로 반영된다.
◆심리적 요인도 크게 작용= 구입빈도가 높을수록 체감물가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소비자물가는 개별가구의 구입빈도를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체감물가는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변동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비슷한 가중치를 가진 배추와 냉장고의 경우를 비교하면, 자주 구입하는 배추는 오르고 내구재인 냉장고는 하락하는 경우 소비자물가는 변동이 적지만 체감물가는 상승한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가격하락보다 가격상승에 민감한 것도 일반적이다. 동일한 가중치를 가진 배가 5% 상승하고, 복숭아가 5% 하락한 경우 소비자물가에는 영향이 없지만, 체감물가는 상승한 것으로 인식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크게 평가한다는 '손실회피편향'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큰 폭의 가격변동을 더 잘 기억하고, 언론보도 등에 영향을 받아 체감물가를 인식하는 소비자들의 경향도 있다.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더 낮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해외연구도 있다.
물가수준이 높을수록 체감물가는 가격상승에 민감한 부분도 있다. 우유가 2년 전에 10% 상승한 경우, 지난해와 비교하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지만, 이미 높아진 우유가격에 따라 체감물가는 상승한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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