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라던 여의도 '지하벙커' 가보니…버스 승강장과 직결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예전에 지하벙커가 있다는 소문은 듣긴 했지. 근데 매일 오가는 곳에 있을 줄은 몰랐네."(60대 여의도버스환승센터 이용객)
1일 오전 '여의도 지하벙커'를 찾았다. 아무도 모르는 '극비시설'이었다는 지하벙커 입구는 뜻밖에도 눈에 잘 띄는 여의도 4차선 대로 한가운데였다. 버스환승센터 2번 승강장 바닥에는 지하벙커로 이어지는 1.8m너비의 계단통로가 뻥 뚫려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오른쪽에는 20평 정도 되는 작은 방이, 왼편에는 180평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벙커는 4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견고한 모습이었다.
"이쪽이 VIP실이고요, 이쪽이 수행원 대기실입니다." 공무원의 안내에 따라 VIP실에 들어서자 '호피무늬' 6인용 소파가 놓여있다. 시간이 지나 삭고 상한 부분을 복원했다고 했다. VIP실에 딸린 화장실에는 조금 녹이 슬고 먼지가 묻었지만 새것 같은 양변기·세면대·거울·수건걸이가 마련돼 있다. 벽면의 흰 타일도 깨진 곳 없이 깨끗했다. 혹시 누가 사용할까봐 '화장실 사용금지 안내문'도 붙어있다.
넓은 수행원실 역시 견고한 모습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인 '코어' 기둥은 일반아파트에 쓰이는 15㎝보다 두꺼운 50㎝로 건설됐다. 지금은 폐쇄된 IFC몰 방향 출입구에는 6㎝ 두께의 철문이 달려있다. 수행원실 옆 기계실에 설치된 40년된 펌프는 지난 2013년 벙커에 찬 물을 뺄 때 실제 사용할 수 있었을 정도였다.
여의도 지하벙커 기자설명회를 진행한 김준기 서울시 안전총괄본부장은 "정확히 누가 만들었는지,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항공사진을 비교해 봤을 때 1976년도와 1977년 사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군부대 관련 정보에 밝은 한 인사는 "당시 5ㆍ16 광장(현 여의도광장)에서는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군의 날 행사를 열었는데, 그 당시 북한의 도발이나 폭격을 우려해 극비로 국회의사당 관련 공사인 것으로 위장해 지하벙커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런 곡절 끝에 만들어진 벙커는 이후 관련자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잊혀진 것으로 보인다.
시는 이 지하벙커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현장조사, 안전점검, 안전조치 등을 실시했다. 지하공간은 30㎝ 정도 침수돼 있었지만 진단 결과 안전에는 지장이 없는 C등급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시는 배수펌프와 환기시설 설치 등 기본적 안전조치를 취하고 석면자재 740㎡를 완전 철거했다.
시는 10일부터 내달 1일까지 시범 개방, 사전 예약을 통해 주말 동안 둘러볼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시는 시민 아이디어를 받아 벙커 활용계획을 마련, 내년 10월에는 전면 시민에 개방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이어 "지난 2005년 여의도 버스환승센터 건립 과정에서 발견됐을 때도 버스환승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편의시설을 만드는 등 시민에 공개할 것을 검토했으나 수익성이 떨어져 무산됐다"며 "이번에는 역사적인 공간인 만큼 내년 10월쯤에는 문화시설로 정식 개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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