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창의문(밖에서 본 모습

서울 창의문(밖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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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한양도성 4소문(四小門) 중 서북편에 있는 '창의문(彰義門)'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산1-1번지 창의문에 대해 30일간의 예고기간 중에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1일 발표했다. 4대문인 숭례문(국보1호, 남대문), 흥인지문(보물1호, 동대문) 외에 4소문(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터) 중에 국가지정문화재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창의문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잇는 자리에 있다. 4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모습을 간직했다. 김철호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주무관은 "문루는 임진왜란 이후 18세기에 중건돼 큰 변형 없이 남아 있어 조선후기 도성 문루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육축 등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며 "4소문 중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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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을 축조할 때 건립됐다. 숙정문(북대문)과 함께 양주, 고양 방면으로 향하는 교통로였다. 1416년(태종 16년)에 폐쇄해 통행을 금했다가 1506년(중종 1년) 다시 문을 열었다. 1623년(인조 1년)에 인조반정(仁祖反正) 때에는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반정군이 창의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문루가 불탔으나 1741~42년(영조 17~18)에 중건하면서 인조반정 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겨 문루 내부에 걸어놓았다.

육축(陸築, 성문을 짓기 위하여 큰 돌로 쌓은 성벽)은 숭례문, 흥인지문처럼 길고 네모난 장대석(長臺石)으로 축조했고 내부에 성으로 올라가기 위한 등성시설(登城施設)을 설치했다. 북쪽의 등성시설은 일반적인 'ㄷ' 형태지만 남쪽은 낮아지는 지형을 감안하여 지어올렸다. 문루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우진각(건물의 네 면에 모두 지붕면이 있는 집)이며,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은 총을 쏠 수 있는 총안(銃眼)이 없는 전돌로 지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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