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원의 거대시장, 자산운용업의 속사정 탐구①
기관투자가 자산증대로 저수익성 운용 늘어 보수율 0.29%가지 하락
전문 인력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해외 진출 돌파구 찾기도 쉽지 않아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이정민 기자] "빈곤의 악순환이죠. 자산운용사마다 돈벌이가 극과 극인 데다 수익원도 불안해요. 수익의 퀄러티(질)가 낮다는 얘기죠. 한 해에 100억원 순익 내는 회사가 고작 10여개입니다. 전체의 70% 이상은 삼성전자 사장 연봉만큼도 못 벌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공ㆍ사모펀드 설정액과 투자일임의 계약 금액을 합한 시장 전체의 총 운용 자산(AUM)은 6월 말 현재 785조원으로 3월 말(755조원) 대비 4%(30조원) 증가했다. 5년 전과 비교해서는 56% 늘었다. 펀드수탁고는 416조원(공모 227조원ㆍ사모 189조원), 투자일임계약고는 369조원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운용보수율이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의 영업수익의 대부분을 결정하는 운용보수율은 크게 떨어졌다. 공모펀드 평균 운용보수율은 지난 2010년 6월 0.46%에서 5년 만에 0.29%까지 하락했다. 전체 운용 자산에서 비중이 늘고 있는 사모펀드와 투자일임의 운용보수는 일반적으로 공모펀드보다 낮아 이를 합하면 평균치는 더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자산운용업계가 '빛 좋은 개살구' 신세가 된 것은 고객의 중심축이 개인투자자에서 기관투자자로 이동하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펀드시장은 개인은 떠나고 그 자리를 연기금과 법인 등 기관 자금이 대신하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대부분인 사모펀드와 투자일임 자산 비중은 5년 전 55.6%에서 올해 70%대 이상으로 커진 반면 개인이 주력인 공모펀드 비중은 30%대 아래로 뚝 떨어졌다.
개인투자자가 공모펀드 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가계에 투자 여유 자금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돈을 맡길 만한 자산운용사와 상품에 대한 신뢰가 없는 탓이 더 크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내 자산운용업의 본질적인 문제는 철학, 원칙,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며 "각 운용사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좌판을 깔아놓고 투자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실상은 유행에 급급해 모든 운용사가 똑같은 펀드를 팔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 800조원의 시장에서 87개의 '플레이어' 중 20~30%는 적자 회사다. 상위 10여개 회사만으로 시장이 돌아가는 비정상적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년 동안 자산운용사의 외형 자산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시장 안에서 갈라먹기 식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심지어 겉은 자산운용사지만 몇 년 간 제대로 된 운용실적도 없이 자기자본금만 까먹는 적자 회사도 수십여 개에 달하는 묘한 상황"이라고 했다.
'스타 펀드매니저'에 의존하는 후진국형 인력 구조도 자산운용업의 위기론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사람을 키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서로 경력자 뺏어가는 데 혈안이지 운용사의 철학과 노하우를 가르치려고도, 또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인력 수급 뿐 아니라 운용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해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증식의 기본적 토양을 마련해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와 인프라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이정민 기자 ljm101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