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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리포트]아베, 클림트 그림 꼭 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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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독일과 오스트리아 회화 전문 미술관인 뉴욕의 노이에(NEUE) 갤러리는 5번가와 86스트리트가 만나는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 보자르 양식의 옛 건물 한 채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뉴욕이 자랑하는 유명 미술관들에 비해선 소박할 정도로 아담하다. 길 건너 대각선 방향에 세계 최대 규모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화려하게 버티고 있어 쉽게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도 노이에 갤러리는 요즘 뉴욕의 미술관들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다. 올해 초 개봉해 화제를 낳았던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덕이라 할 수 있다. 노이에 갤러리는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바로 그 그림,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아델의 초상화는 추가 설명이 불필요한 작품이다. 20세기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인 동시에 현대 미술의 손꼽히는 걸작이다. 여기에 영화를 통해 이 그림이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게 된 흥미진진한 배경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영화 '우먼 인 골드'의 포스터

영화 '우먼 인 골드'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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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노이에 갤러리도 '구스타프 클림트와 아델 블로흐-바우어:우먼 인 골드' 기획전을 오는 9월7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기자도 '더 늦기 전'에 지난 주말 노이에 갤러리를 찾았다. 오전임에도 관람객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1층 로비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곧바로 2층 전시실로 향했다. 메인 전시실 한쪽 벽에는 아델의 초상화가 고혹적인 눈길로 관람객을 맞고 있다. 창백한 얼굴 속에 몽환적인 눈빛과 붉은 입술, 클림트가 비잔틴 양식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얻어 실제 황금을 재료로 완성한 눈부신 드레스 배경이 묘한 조화를 이룬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의 숨죽인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바로 옆 전시실에는 클림트가 4년의 열정을 바쳐 1907년에 이 걸작을 완성한 과정과 준비과정이 한눈에 들어오게 설명돼 있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불렸던 이 작품이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와 지금 노이에 갤러리에 있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클림트에게 이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아델의 남편인 페르디난드 블로흐-바우어다. 유태인 출신의 재력가였던 그는 결혼 선물로 이 초상화를 의뢰했다. 완성된 작품은 이후 페르디난드의 비엔나 저택에 걸려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를 장악한 독일 나치의 손에 넘어갔고 전후에는 2005년까지 '우먼 인 골드'라는 작품 명으로 오스트리아의 벨베디어 궁전 안에 있는 국립미술관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나치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가까스로 미국으로 넘어왔던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신출내기 변호사 랜디 쇤베르크와 손잡고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한 8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이 작품을 돌려받게 된다. 이후 이 작품은 회화 작품 중 최고 경매가인 1억3500만달러(1575억원)에 팔려 2006년부터 노이에 갤러리에서 전시돼 있다.

설명을 따라 읽으면서 영화 '우먼 인 골드'의 주요 장면들이 생생히 다시 떠올랐다.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변호사 쇤베르크가 오스트리아 중재위원회를 상대로 최종 변론을 펼치던 장면이다.

영화에서도 소개됐지만 당시 알트만 측이 승소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치가 페르디난드 일가의 재산을 약탈한 과정과 근거, 그리고 전후 수십 년간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를 소장하게 된 과정을 불법이라고 반박할 결정적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약탈과 살육의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죄상을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남겨뒀을 리는 없다. 피해자들도 증거와 증언을 일일이 챙겨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제국주의 침탈의 광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들에게 그럴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런 틈바구니를 이용해 오스트리아 정부도 국보급 미술품인 '우먼 인 골드'만큼은 내줄 이유가 없다고 버텼던 셈이다. 수세에 몰린 변호사 쇤베르크는 마지막 진술에서 자료 제출 대신 오스트리아의 양심에 호소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는 "제발 나치와 오스트리아가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만이라도 솔직히 인정해 달라"고 호소한다. 영화에선 "이 같은 행동은 비단 알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미래와 후손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결국 오스트리아의 중재위원회는 당초 예상을 뒤집고 아델의 초상화를 알트만에게 되돌려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아델의 초상화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둘러싼 공방의 본질은 '아베 담화' 논란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전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 과거 침략 전쟁과 식민지배, 그 피해에 대한 진솔한 사죄는 담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정부는 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서도 '이를 입증할 공식 문서나 증거가 없다'는 논리로 책임을 피해가고 있다.

쇤베르크 변호사가 이 문제로 국제 법정에 섰다면 아마도 이런 요지의 최후 변론을 했을 것 같다.

"아베 총리,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본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사과입니다.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정은 피해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미래와 후손들을 위해서 절실한 것입니다."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핑계로 과거사 문제와 사과를 외면하려는 아베 총리에게 너무 늦기 전에 '구스타프 클림트와 아델 블로흐-바우어 특별전' 관람을 꼭 권하고 싶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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