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22층 공동소유주 22명 의기투합, 홍보부터 작품 설치까지 모두 부담

<이명재 논설위원>


사진계에서 ‘22’는 지금 하나의 숫자 이상의 어떤 상징이 되고 있다. 그것은 사진·미술 대안공간인 ‘스페이스 22’라는 매우 특별한 공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이곳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시선에는 이 공간이 하나의 ‘실험’의 발원지로, 지속가능한 대안의 마당으로, 사람들의 선의가 온갖 ‘현실’로부터 벗어나 이룩하는 하나의 긍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대안 사진 공간 ‘스페이스 22’를 함께 일궈가는 운영위원들이 지난 4월 한 자리에 모였을 때의 모습.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성태·최연하.한정희·주계환·김현숙·윤승준·이경자·유영주·금혜정·이혜숙·이상임·박숙자·차효중·박명수씨. 김석언·김청희·서상호·오일환·육태규·이은숙·정진호·황성윤·황인화 ·황정호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안 사진 공간 ‘스페이스 22’를 함께 일궈가는 운영위원들이 지난 4월 한 자리에 모였을 때의 모습.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성태·최연하.한정희·주계환·김현숙·윤승준·이경자·유영주·금혜정·이혜숙·이상임·박숙자·차효중·박명수씨. 김석언·김청희·서상호·오일환·육태규·이은숙·정진호·황성윤·황인화 ·황정호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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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4거리 미진프라자 빌딩 22층의 사진 갤러리 ‘스페이스 22’에서는 작가가 그야말로 ‘초대’된다. 그것은 우선 대관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무료'라는 사실은 이제 이 공간이 갖고 있는 것들의 극히 작은 일부가 돼가고 있는 듯하다. 스페이스22의 ‘22명’의 운영위원들과 스태프들은 온 열의와 정성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을 맞는다. 작가들에겐 임대료뿐만 아니라 관리비, 주차비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고 전시부터 도록, 홍보인쇄물 제작과 온오프 홍보, 작품 운송 및 설치까지 모두 스페이스22가 부담한다.

운영위원들은 전시 개막 때면 음식과 술을 직접 마련해 상을 차린다. 이들이 환대하는 것은 작가와 관객들, 그리고 이 공간에 주목하고 지지를 보내는 이들의 기대, 그 모든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개관 날짜까지 22일(2013년 12월)로 맞춘 이 갤러리로 인해 ‘22’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공간이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마련돼 가고 있다는 점은, 이곳에 더욱 주목을 하게 만든다. 아니 주목을 해야 마땅할 이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스페이스22를 우리는, 속도와 경쟁의 공간이며 계산과 효율의 논리가 다른 어느 곳보다 앞서는 곳, 속성으로 세워진 건물들 위로 욕망이 부유(浮游)하는 곳에서 발견하는 선한 열망의 한 응결물로서 바라봐 줘야 할 듯하다.


함께 사진을 배우면서 알게 된 미진 빌딩 주주이자 소유주들의 대표인 정진호씨와 건축가 윤승준씨 간의, 사진 전시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기투합이 시초가 돼서 22층의 공동소유주 들이 합류해 스페이스22가 출범하기까지의 과정은 강남 중심가의 보증금이나 월 임대료를 생각하면 매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란 게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렵게 내린 결정을 넘어서 과연 지속가능하느냐는 것이 또 다른 과제였다.


“거창한 일을 한다기보다 즐겁게 하자. 그런 생각일 뿐이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으로서였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겠죠. 그러나 같이 하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하냐’는 물음에 “사진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요? 그게 사진 작업을 하는 이들만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진을 감상하고 즐기는 이라면, 사진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믿는 이라면 사진을 한다고 해야겠죠”라고 한 어느 운영위원의 현답(賢答)에서 ‘지속가능성’의 한 단서가 보이는 듯하다.


이들의 얘기는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그러나 돈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 아니 돈이 있어서 오히려 못하는 일에 대해 생각게 한다. 이들의 실험은 자연에 생태적 다양성이 있듯 ‘부(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도시는 건물과 함께 ‘시민’이 만들어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 듯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운영위원 회의가 있던 지난 15일은 마침 김민호 작가의 전시회가 ‘적(積)’이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었다. “목탄 드로잉의 자취(적·迹)를 담은 풍경 이미지로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최연하 큐레이터)”이라는 설명처럼 스페이스22에는 의미가 쌓이고 있으며, 의지가 쌓이고 있으며, 응원이 쌓이고 있다. 그 의지와 의미가 22층보다 더 높은 고봉을,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구조물을 쌓아 올리고 있다.


스페이스 22에는 내년까지 전시 일정이 꽉 차 있다. 이 같은 공간에 대한 필요와 요청이 그 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사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안정적으로 작업하기 힘든 사진계 사람들의 성원이 그 높이와 넓이를 올리고 확장할 것이다.
해 저물녘, 갤러리 위 옥상에 올라가면 낙조가 펼쳐진다. 한낮의 햇살과 밤의 어둠이 서로 다투는 듯하다가 마침내 서로를 받아들이며 신비로운 빛깔로 도시를 물들이는 그 풍경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그러나 그 낙조가 진정 아름다운 것은 그 아래 인간의 삶의 풍경과 만나기 때문일 텐데, 스페이스22 옥상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그 노을과 잘 어울리는 삶의 한 모습이 그 아래에 있기 때문일 듯하다. 그러므로 전시회에 걸리는 사진들 이상으로 스페이스22 그 자신이야말로 사진의 한 풍경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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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22는 아직 이 화려한 도시의 매우 작은 ‘섬’처럼 보인다. 이 고도(高島)를 외로운 고도(孤島)가 아닌, 견실한 하나의 ‘기지’로 만드는 것, 그건 ‘스페이스22 사람들’만의 몫은 아닐 듯하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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