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을 모델로 그린, 구본웅'우인상'
화가 구본웅(1906~1953)은 생후 넉 달 만에 어머니를 산후병으로 잃었다. 하녀 복실이가 젖동냥을 다니다가 대청마루 댓돌을 헛짚어 아이를 떨어뜨렸다. 1년 뒤 척추 이상이 왔고 그는 곱사등이 되었다. 그가 경성제1고보(현 경기중고교의 전신)에 응시했을 때 면접관은 "우리 학교는 정신적, 신체적,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는 영재들만 뽑는다"고 말했고 그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후 사립학교인 경신고보에 입학한다.
김해경(시인 이상의 본명)과 구본웅은 경복궁 서쪽 동네의 초등학교(신명학교) 동기동창이었다. 구본웅이 네 살 많았으나 불구의 몸 때문에 학교를 다니다 말다 하는 바람에 4년을 굽었다. 구본웅은 중학교 2학년 때인 1922년 여름에 조선미전을 구경갔다가 이웃 학교에 다니던 보성고보 학생 해경을 다시 만난다. 해경은 1927년 보성고보를 졸업한 뒤 경성고등공고(서울대 공대의 전신)에 입학했다. 이날 구본웅은 김해경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스케치박스(사생상ㆍ寫生箱)'를 선물로 준다. 해경은 그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아호를 '이상(李箱)'이라고 짓는다. 자신은 김씨이지만 '나무(李)상자'라는 의미를 담아 아예 성조차 바꾼 셈이 됐다.
구본웅은 자신의 새엄마(변동숙)의 의붓동생인 18세 변동림(1916~2004)을 이상에게 소개시켜준다. 변동림은 잠깐이지만 이상과 결혼생활을 한다. 이로써 이상은 구본웅의 '이모부'가 되었다. 구본웅은 조선 최초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고 '서울의 로뜨렉'이라 불렸다. 이상은 난해시로 논란을 자주 불러일으킨 '천재시인'이었다.
1935년 3월3일 구본웅은 시인 이상을 작업실로 불렀다. 구본웅은 친구에게 파이프 담배를 물라고 말했다. 이상은 파이프 담배를 피지 않았고 오히려 구본웅이 자주 무는 편이었다. 화가는 친구를 바라보며 그 속에 자신을 그려 넣었던 것 같다. 삐딱한 눈매에서 쏟아져나오는 시대에 대한 조롱, 창백한 우수와 깊은 어둠에 잠긴 권태와 피로감, 푸른 기운이 스멀거리는 가운데 세상을 이탈한 듯한 내면풍경까지 격렬한 터치감과 암울한 색조가 뒤엉켰다. 이 '우인상(友人像)'은 이상의 제비다방에 걸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