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액티비스트 '장하성펀드'가 남긴 유산은
[아시아 경제 이현우 기자, 최동현기자]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행동주의(Activist) 투자자의 활동이 미미했다.
굳이 꼽자면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FG). 일명 '장하성펀드'다.
장하성펀드는 2006년 출범됐다가 차츰 시들해지며 6년만에 청산됐다.
활동기간이 짧았지만 여운은 강했다. 장하성 펀드가 아직도 언급되고 있는 이유다.
장하성펀드는 2006년 8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의 지분을 인수해 투명한 이사진을 구성하는 등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에 목적을 두고 출시됐다.
당시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고 있었던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투자고문을 맡고 미국의 헤지펀드 운용사인 라자드에셋 매니지먼트가 실제 운용을 맡았다.
출시 초반에는 강한 돌풍을 일으켰다. 장하성펀드가 매입한 대한화섬과 태광산업의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다.
2006년 8월23일 7만5000원이었던 대한화섬은 장하성펀드가 이날 매입했다는 소식에 엿새만인 8월29일13만1000원으로 주가가 74.66% 급등했다. 태광산업은 같은기간 주가가 49만9000원에서 82만2000원으로 뛰어 64.72% 올랐다.
하지만 초창기 돌풍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점점 영향력이 위축되다가 사라졌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거시적 목표에 비해 펀드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았고 거시적 방향을 뒷받침할만한 세부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대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기업법제팀 과장은 "장하성펀드가 실질적으로 한 기업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10% 이상 지배주주 지위의 힘이 있어야 했지만 자금이 작아서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움직일지 정하고 다른 주주들과의 이해관계도 일치해야했지만 목표가 불분명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삼성물산 합병 반대에 나선 엘리엇과 뚜렷히 대비된다.
장하성펀드는 기업지배구조라는 목표로 이익창출이나 투자개념이 아니라 실제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 자체가 거시적이었다.
시장 전체를 보고 지배구조를 바꿔야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제고된다고 주장하다보니 개별기업이나 소액주주들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엘리엇의 경우에는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재빨리 필요 지분을 매입하고 아군을 끌어들이는 등 목표의식이 뚜렷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강한 효과를 나타냈다.
이런맥락에서 장하성 펀드의 중요한 실패요인으로 기관투자자들과의 연대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2006년 당시에는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윤준수 기업지배구조원 연구원은 "당시 기관투자자들이 장하성펀드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모회사와 투자대상기업간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운용사와 투자대상기업간에도 복잡한 관계가 성립돼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A라는 운용사가 B기업에 투자하면서 경영진에 대해 적대적 의결권을 행사했다면 새로 기업공개(IPO)를 하는 B기업 계열사나 주식관련 프로젝트에 있어 해당 운용사를 충분히 제외시킬 수 있는 등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있다"고 지적했다.
장하성펀드가 사라진 이후 국내에는 기업지배구조펀드, 책임투자펀드와 같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 펀드들은 엘리엇이나 다른 외국 헤지펀드 운용사들처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뛰어들어 자본차익을 얻는 방식보다는 안전한 기업에 투자해 안정적 수익을 올리는데 만족하게 됐다.
윤 연구원은 "아직 국내상황에서 엘리엇과 같은 형태의 행동주의 투자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최근에 헤지펀드 관련 규제완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제2의 장하성펀드와 같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펀드들이 앞으로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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