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인혁당 사건 최종 무죄판결…50년만에 무죄 확정, 도예종씨 등 이미 사형 집행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피고인 도예종의 반공법 위반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다."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도예종씨 등 '1차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9명에 대한 재심 판결에서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대법원이 1965년 9월 유죄 판결을 내놓은 지 50년 만이다. 인혁당 사건은 현대사의 일그러진 현실과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박정희 정부가 한일회담 반발 여론으로 정치적 위기로 내몰렸던 1964년 8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1차 인혁당 사건'을 터뜨렸다. 학생 시위 배후에 북괴 지령을 받고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인 '인혁당'이 있다는 내용이다. 중정은 인혁당 관련자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중이라고 발표했다.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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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인혁당 발표로 반정부 시위 열기를 잠재우는 효과를 봤지만, 곳곳에서 무리수가 드러났다. 인혁당 사건 담당 검사는 훗날 "도예종씨 몸통에 지지고 멍든 상처가 남아있었으며 중정에서 고문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사들이 사표를 내면서 무리한 기소에 저항했지만, 검찰 지휘부는 편법으로 기소를 강행했다. 법원은 이러한 무리수를 걸러내기는커녕 동조했고,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인혁당 사건은 10년 뒤 재연됐다. 박정희 정부는 1974년 유신 반대 여론이 뜨거워지자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불리는 2차 인혁당 사건을 터뜨렸다. 도씨 등이 참여한 인혁당 재건위가 국가변란을 기도했다는 내용이다. 법원은 이번에도 권력의 도우미 역할을 이어갔다.


대법원은 1975년 4월8일 도씨 등 8명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비상보통군법회의는 다음날인 4월9일 곧바로 도씨 등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국제법학자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다.


국제사회는 당시 사건을 '사법살인'으로 인식했고, 인혁당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인혁당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재조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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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2차 인혁당 사건은 2007~2008년 이미 무죄가 확정됐다. 1차 인혁당 사건은 이번에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이 반세기만에 매듭을 지었지만, 도씨는 40년 전 사형집행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인 오영중 변호사는 "법원이 인권을 외면하고 권력 눈치를 보다 사법살인으로 이어진 인혁당 사건을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으면 철학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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