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대한민국' 우린 뭘 해야 하는 거요

[아시아경제 이명재 논설위원]
원로(元老)는 어떤 이를 말함인가? 흔히 원로라고 불리는 많은 이들, 특히 스스로 원로임을 내세우는 이들의 실망스런 행태를 생각할 때 진짜 원로의 한 모습은 스스로 원로라고 내세우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로(老)', 즉 현인(賢人)이라고 하지 않을 때, 자신이 답을 주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싶다.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에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7)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원로의 한 모범이라고 할 만하다. 문단과 시민사회의 '어른'으로서 언제나 인터뷰의 '대상'이었던 백낙청은 이 책에서 자신이 거꾸로 인터뷰어가 되어 지식인ㆍ활동가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이 책의 의의는 그런 점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그 형식에 있다.

 각계 전문가 일곱명을 차례로 만나 한국사회가 처한 위기의 진상을 묻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대담집으로 이름 붙인 이 책에서 '원로' 백 교수는 질문자다. 그리고 그는 좋은 답변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보다 많게는 30년에서 적게는 10년가량 나이 어린 후배 일곱 명은 백 교수의 정성과 열의, 그리고 깊이만큼의 진지함과 열성, 깊이를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대담'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책에서 묻는 이와 답하는 이들은 '적공(積功)'과 '전환'을 얘기한다.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큰 적공이란 무엇이고 큰 전환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찾으려 했다. '적공'과 '전환'. 이 두 단어는 예사롭지 않다. 사전적으로 '공력, 공덕을 쌓는다'는 뜻의 적공에는 '한국사회 대전환'이, 아니 그 전환을 위한 인식과 실천이 단기간에 되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담자들은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임을, 그리고 권력의 변화도 사회의 변화를 위한 준비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그 역설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인과의 순환고리를 이룬다.

 저자들이 말하는 '대전환'은 87년체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저자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상당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질곡 속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문제들, 그런 개혁과제를 제대로 선별하고 배합해 총체적인 진전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일치한다. 질문을 받는 7인의 전문가들은 모두 해당 분야의 현장에 밀착해 있는 활동가나 연구자들이지만 이들의 답변은 전문성의 깊이를 갖추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분야의 '협소한 깊이'에 갇히지 않고 총체적인 시야를 갖추려 애쓴 데서 주목할 만하다.


 '경제 편' 대담에서 경제학자 정대영(송현경제연구소장)은 한국경제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한 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민생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정규직-비정규직' 대결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즉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로 보는 것은 "조금 나은 서민과 조금 더 못한 서민간의 싸움"으로 보는 결과가 된다면서 좀 더 큰 틀에서 구조적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업에 따르는 신분의 서열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노동자들 간의 싸움으로 국한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평론가 이범(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교육 편' 대담에선 초중등 교육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통해 좁은 시야를 넓힐 것을 주문한다. '교육문제는 곧 민생문제'라는 범사회적 프레임이 제안된다. 사회학자 조은(동국대 명예교수)과 함께한 '여성 편'에서도 여성문제를 양극화ㆍ고용불안정ㆍ보육ㆍ사교육 문제 해결과 연결지어야 할 과제가 제시된다.


 '노동 편'에선 박근혜정부가 최대 과제로 꼽는 '공공개혁'의 당사자인 철도노동조합의 위원장 김영훈이 노동계가 관성적인 구호 대신 다수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공공ㆍ노동 부문이 선제적 개혁안을 내놓고 사회복지와 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것이 운동의 활로라고 역설한다.


 '남북관계 편'(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환경 편'(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도 국방문제가 우리 청년과 부모 세대 모두의 민생문제임을 드러내며, 성장과 생태가 만나는 '적당한 성장' 패러다임이 제기된다.


 '정치 편'에서 다음 대통령은 어떤 이가 돼야 하는가에 대해 정치평론가 박성민(MIN컨설팅 대표는 "선거에 이기려면 선거를 벗어나야 한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대담자들의 얘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의 시야를 이명박ㆍ박근혜 비판에서 근대 한국정치사 전반으로, 남한에서 한반도로 넓히는 '변혁적 중도주의'로 모으자는 것이다.


 이 책이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한 과제를 최대한 담으려 하긴 했지만 모든 분야를 총망라했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빠진 분야가 있을 텐데 어떤 분야가 추가돼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이 책을 실천적으로 깊이 있게 읽는 한 방법일 것이다. 아마 언론도 그 중 하나가 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은 대담에 2개월, 정리에 2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4개월 만에 만들어진 것일까. 다른 많은 책들도 그렇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지난 수년, 수십 년간의 인식과 실천, 성찰의 결과물이랄 수 있을 듯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결과물이라기보다는 끊임없는 모색의 과정 중의 산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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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짧게는 지난 2012년에 백 교수가 펴냈던 '2013년체제 만들기'라는 저서에서 밝힌 시대전환의 꿈으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성찰과 모색-그 과정에서 지난 1년 반 이상의 사회적 발언에서의 침묵까지 포함한-의 결과물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반성과 다짐들을 들으며 "나도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었다"는 백 교수 자신의 자책이자 각오가 이 책을 낳은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창작과비평 2014년 겨울호'에 발표했던 글이 이 책의 '씨앗'이 됐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세월호의 자식'이면서 세월호 이후의 한국의 미래에 대한 '서원(誓願)'인 셈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
 


이명재 기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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