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적 판단 담긴 승부수, 불법시인 자초…檢 논리 방어막 펼치려다 자충수?
지난 8일 검찰에 소환된 홍 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8인 중 형사처벌 0순위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었다. 검찰은 2011년 7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 기탁금(1억2000만원)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1억원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홍 지사는 "기탁금 1억2000만원은 아내가 몰래 모아둔 비자금"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11년간 변호사를 하면서 번 돈 일부와 2008년 국회운영위원장을 할 때 국회 대책비 월 4000만~5000만원 일부를 생활비로 준 것 등을 아내가 조금씩 모아 은행 대여금고에 넣어뒀다"고 설명했다.
홍 지사 발언은 인화성이 강했다. 곧바로 '불법시인' 논란으로 번졌다. 특수활동비인 국회대책비 일부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는 발언은 '업무상 횡령'에 해당될 수 있다. 아내 비자금 발언은 공직자 재산신고 누락과 직결되는 문제다. 공직자의 재산신고 누락은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를 개인계좌에 넣고 개인 돈과 섞어 사용한 게 문제가 돼 후보에서 사퇴한 바 있다. 최진녕 변호사는 "이동흡 후보자는 참여연대 등의 고발로 검찰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면서 "홍 지사 발언은 자충수로 볼 수도 있지만 법률적으로 고도의 계산된 발언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홍 지사는 '아내 비자금' 발언을 통해 당 대표 경선자금 출처를 둘러싼 검찰의 의혹 제기에 방어막을 펴면서, 1억원 수수 의혹 사건을 아내 비자금 사건으로 돌리는 프레임(생각의 틀) 전환 효과를 노렸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동흡 후보자의 무혐의 처분 선례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게 됐다.
홍 지사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시절 수억원대의 공천헌금이 오갔다는 얘기를 흘리기까지 했다. 사안의 초점을 분산하고 논란거리를 계속 만들어내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홍 지사 선택은 정치적 상처를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려는 포석이다. 그럼에도 홍 지사의 최근 행보가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자충수로 귀결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홍 지사는 대권을 목표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시선이 중요하다. 그의 모습이 '잔꾀'로 비칠 경우 장기적으로 볼 때 정치적 내상은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부장검사 출신인 김경진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서는 돈이 전달됐다는 일시와 장소가 특정돼야 처벌할 수 있는데 홍 지사와 아내가 비자금 대여금고에 언제 돈이 들어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경우 법률적으로는 수사 불가상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홍 지사 해명은 부패 정치인 이미지를 자초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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