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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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박사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권이 나왔을 때 독자들은 기왕에 보는 꽃, 이름을 불러주면 더 좋은 것처럼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이전과 다르리라'는 문화미의 깊은 맛에 환호했다. 유 박사가 주로 유물 중심의 발로 뛰는 답사를 통해 전통문화미의 진수를 전파한다면 빈섬 이상국의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은 정신의 답사다. 고요한 방에 눕든, 앉든 편한 자세로 한시 속에 숨어있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지혜를 깨우치면서 무릎을 쳐나가는 것이다. 이 또한 사랑하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똑 같다.
옛시의 곤혹스러움은 먼저 한자(漢字)에 있다. 오언절구든 칠언절구든 글자마다 음과 뜻을 알아야 하고, 그것들을 모두 안다고 해도 전체 문장의 해석은 다시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한시에 대해 남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딱 두세 줄 정도에서 책을 덮어 버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물으면서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을 펼쳐보았다.
'두보의 눈길로 반딧불이를 보다'라는 소제목에 이르렀다. '행인부초출(幸因腐草出) 감근태양비(敢近太陽飛) 미족임서권(未足臨書卷) 시능점객의(時能點客衣)'까지 당나라 시성 두보의 '반딧불이'라는 시를 그냥 읽어봐서는 도대체 뭔 소린가, 해독이 안 된다. 이제 저자의 번역을 따라 '어쩌다 썩은 풀에서 생겨나, 감히 태양 가까이 날겠는가. 책 가까이 두기에도 모자라지만, 때로 나그네의 옷에 한 점 빛을 비출 순 있네'까지 읽으면 시의 뜻이 대충은 해독이 되지만 시의 깊은 맛은 아득할 뿐, 감이 쉬 오지 않는다. 그러나 뒤따르는 저자의 해설까지 읽으면 비로소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해설에 따르면 반딧불이로 공부를 했다는 차윤의 형설지공(螢雪之功)은 반딧불이의 실제 밝기로 봤을 때 비현실적이다. 두보는 부유하는 반딧불이의 연약한 빛을 팩트(사실)로 잡아내 세상을 떠도는 자신의 애잔한 삶을 노래했다. 차윤의 반딧불이는 '태양빛, 독서, 이성, 지혜'를 뜻하지만 두보의 반딧불이는 '자연, 감성, 파동, 시'를 뜻한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위의 원문과 번역을 다시 읽으면 느낌이 어떤지, 그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지 독자 스스로 판단해 보자.
전체적으로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은 시의 뜻, 시인의 삶, 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에다 저자 스스로 이 시를 읽으며 되새기는 인문학적 지식의 깨우침이 함께 한다. 어쩌면 '나의 인문학적 옛시답사기'가 책 제목으로 안성맞춤인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때문에 자존심상 그리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기다 중국과 우리 선조들의 한시, 가요 중 백미들만 고른 저자의 시적 안목도 이 책의 가치에 한 몫을 더한다.
두보의 '반딧불이' 마지막 구절이 궁금하겠다. '시월청상중(十月淸霜重) 표령하처귀(飄零何處歸) 시월이 되어 맑은 서리 되게 내리면, 떠도는 넋이여 어디로 돌아가려는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시는 송나라 섭소옹의 '유원불치(遊園不値)'를 번역/해설한 '바람난 살구꽃에 관한 리포트'이다. 불후명시의 행간에 숨은 깊은 맛에 이 참에 한시(漢詩)에 제대로 빠져볼까 하는 욕심이 깊어진다. (옛시 속에 숨은 인문학 / 이상국 / 슬로래빗 / 1만 3천 8백 원).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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