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모를 밝히다
총 79권으로 13년 만에 공식 완역본 전집 완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아서 코난 도일(1859~1930)에게 '셜록 홈즈'가 있었다면,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에게는 할머니 탐정 '미스 마플'과 콧수염 신사 '에르퀼 푸와르'가 있었다. "셜록 홈즈의 전통에 뼛속까지 잠겼다"고 고백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명탐정 '셜록'에 푹 빠져 지냈던 애거서 크리스티는 후에 자신이 '추리소설의 여왕'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40억부가 넘게 팔렸으며, 이 기록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성경 다음이다. 유네스코가 세계 번역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만든 도구인 '번역 인덱스'에 따르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개인 작가이기도 하다.
◆ 애거서 크리스티 공식 완역본 전집 완간
최근 국내에서는 마침내 애거서 크리스티의 공식 완역본 전집이 79권으로 완간됐다. 출판사 민음사의 장르소설 브랜드인 황금가지는 2002년 그의 유작 단편집인 '빛이 있는 동안'으로 이 대형 프로젝트의 첫 발을 디뎠다. 그 이후로 총 66편의 장편과 150여편의 중·단편을 내놓은 끝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든 추리소설을 집대성한 전집을 완간할 수 있었다. 1권을 내놓은 지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단편집에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분신과도 같은 두 캐릭터 '푸아로'와 '마플' 양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78권 '빅토리 무도회 사건'에서는 총 16편의 단편을, 79권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에서는 총 8편의 단편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까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은 국내에서 총 5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황금가지에 따르면 이중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2011년 이후 종이책 판매량 기준)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이다. 그의 작품 중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혹은 세계 3대 미스터리)로 손꼽힌다. 전세계적으로는 1억부 이상이 팔렸으며, 1945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동요 '열 꼬마 인디언'에 맞춰 섬에 모인 열 사람이 차례차례 죽어나가는 설정과 마지막의 반전이 섬뜩하다.
다음으로 인기있는 작품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ABC 살인사건', '빛이 있는 동안' 등의 순이다. 폭설로 인해 고립된 열차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고, 열두 명의 승객들은 각자의 알리바이를 내세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탐정 '푸아로'가 등장하는 가장 인기있는 대표작이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작가 자신이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자평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획기적인 결말로 논란에 휩싸인 작품이기도 하다. "요즘은 추리소설에서 누구나 다 범인이 될 수 있어. 심지어 탐정까지도"라는 형부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썼다고 한다.
◆ 평범한 주부에서 '미스터리의 여왕'이 되기까지
애거서 크리스티는 1890년 보수적이지만 부유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문학에 몰두했지만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했다. 다만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넋을 잃고 엉뚱한 상상에 빠진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1914년 첫 남편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동안, 그는 간호사로 자원해 병원에서 근무했다. '누가 독살당할까? 언제, 어디서, 누구를 독살하지?' 혼자 조제실을 지키고 있을 때면 이 같은 공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때부터 애거서 크리스티는 본격적으로 추리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다양한 작품에서 자유자재로 각종 독극물을 소재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1920년 마침내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이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차츰차츰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두 번에 걸친 결혼생활 등으로 애거서 크리스티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특히 1926년 12월,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열흘이 넘도록 실종된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당사자 역시 인터뷰나 작품을 통해서 여기에 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아 더욱 궁금증을 낳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이 사건만을 따로 다룬 뮤지컬('아가사')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다만 자서전의 한 대목에서 그는 말한다. "때로는 나락으로 떨어진 듯 절망하고, 날카로운 비참함에 온몸이 꿰이고, 슬픔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임을 여전히 확신한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소설의 시작부터 범인과 범죄의 동기를 문장 속에 숨겨놓는다. 독자들은 이 숨바꼭질에서 매번 뒤통수를 맞으면서도, 그 반전의 스릴과 서스펜스때문에 그의 작품을 다시 찾는다. 슬슬 날이 더워지고 있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겠냐마는, 추리소설을 읽으며 보내는 봄 밤도 추천할 만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78, 79권) / 김유미 옮김 / 황금가지 / 각권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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