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의 축구 철학 K리그에 녹여
수원, 슈퍼매치서 서울 완파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부임 3년차. '서정원 표' 축구가 서서히 수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연함, 공감, 기술에 대한 신뢰. 그 깊은 곳에는 세계 축구사의 큰 이름, 데트마어 크라머(Dettmar Cramer·90)가 있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서정원 감독(45)은 지난 18일 '빅버드'에서 열린 FC서울과의 시즌 첫 '슈퍼매치'에서 5-1로 크게 이겼다. 수원은 4승2무1패(승점 14)로 전북(6승1무 승점 19)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주목하는 라이벌전에서 승리한 수원은 뜨거웠다. 홈 관중 2만6250명은 좀처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떠나지 못했다. 서 감독은 옛 스승을 떠올리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크라머 감독은 1990년 11월 21일 대한축구협회의 대표팀 기술고문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사실상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하는 23세 이하 대표팀의 총감독이었다. 그는 뮌헨 사령탑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컵에서 두 차례(1975, 1976년) 우승했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1968년 일본을 멕시코시티올림픽 동메달로 이끌었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서 감독은 이듬해 1월 7일 입국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충고를 잊지 않는다. "너는 더 큰 선수가 될 것이다. 자신을 믿어라."
서정원 감독은 선수의 장점을 먼저 찾아내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해법을 제시하며 "다시 해보자"고 동기를 부여하는 크라머의 리더십에 매료됐다. 서 감독 뿐 아니었다. 바르셀로나 행 티켓을 따냈을 때 우리 선수들은 모두 크라머 감독에게 달려가 안겼다. 국내 감독과 코치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알고 있었다. 크라머 감독이 한국을 떠날 때 서 감독은 공항까지 나가 배웅했다.
옛 스승에 대해 추억하는 서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지난 4일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크라머 감독은 건강이 좋지 않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위독하다는 소식도 들려 서 감독은 마음이 아프다. "아직 축하 인사도 못 드렸는데 걱정스럽다. 꼭 쾌차하셔서 더 조언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